사진=서울대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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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아라 기자 ] "학교가 징계를 내리면 철회를 요구할 겁니다. 학생들은 앞으로도 시흥캠퍼스 철회를 위해 싸워나갈 것을 결의했습니다."

서울대 시흥캠퍼스 추진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 중인 이 대학 학생 김준수 씨(경제학과·가명)은 1일 이 같이 말했다. 성낙인 총장이 사태 해결을 위해 제시한 중재안에 대한 반응은 싸늘했다. 앞서 학교 측은 본관 점거 학생들에 대한 '출교' 조치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학생들도 "끝까지 간다"는 분위기여서 시흥캠퍼스를 둘러싼 양측 대립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학생들이 본관 점거를 계속하는 근본적 이유는 대학 상업화 우려다. 이들은 "시흥캠퍼스는 수익사업과 산학협력 위주로 운영될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교육 공공성이 무너질 것으로 봤다. 시흥캠퍼스 추진 과정에서의 학생의견 수렴 부족도 문제로 들었다.

반면 학교 측은 드론·빅데이터·자율주행차 등 융합연구와 미래 핵심역량 강화를 위해 시흥캠퍼스가 필요하다는 입장. 대학 상업화 우려에 대해선 "그런 논리라면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탠퍼드대는 없어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스탠퍼드대는 벤처창업과 기업가정신의 요람으로 꼽힌다.

◆ 학생들 "시흥캠퍼스, 비민주적 결정·교육공공성 파괴"

서울대 시흥캠퍼스 설립을 둘러싼 학내 구성원간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학생들이 본관 점거농성에 돌입한 것은 작년10월10일. 이미 100일을 넘겼다. 지난달 11일 학교 본부가 점거 학생 29명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하자 갈등은 한층 고조됐다.

흘러나온 징계 수위는 셌다. 재입학이 불가능한 출교 조치까지 거론됐다. 같은달 25일 시민·노동단체까지 나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비판하자 성 총장은 구성원들에게 '행정관 점거 사태 해결을 희망하며'라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시흥캠퍼스로의 특정 학년·학과 이전이나 기숙형 대학(레지덴셜칼리지)을 운영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성 총장의 중재안이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일 뿐이란 이유에서다. "점거 해제조건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성 총장이 중재안을 '마지막 제안'이라고 표현하면서 징계 절차를 '일시 중단'하겠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준수 씨는 "결국 총장의 제안은 학생들이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징계 절차에 착수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씨는 특히 "총학생회가 시흥캠퍼스 재정운영계획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부존재' 통보를 받을 만큼 재정운영계획이 마련 안돼 있었다"면서 "수익사업과 산학협력으로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빚은 '옥시 연구용역 보고서' 사례에서 보듯 학교가 기업들 입맛에 맞는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교가 학생들 의사를 배제하고 시흥캠퍼스를 추진한 점, 시흥캠퍼스 운영비로 인해 재정 부담이 학생들에게 전가될 수 있는 점 등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씨는 "학교는 시흥캠퍼스에 특정 학년이나 학과 이전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설립될 기숙사 규모를 보면 3000~4000명의 학생 이전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 학교 측 "관악캠퍼스에선 드론·자율주행차 실험 못해"

학교 입장은 다르다. 시흥캠퍼스가 꼭 필요하다고 봤다. 시흥캠퍼스 설립은 2025년까지 세계 10위권 대학 진입을 목표로 서울대가 제시한 '서울대 장기발전계획(2007~2015년)'의 일환이다. 시흥캠퍼스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각종 융합연구에 주력한다는 복안이다.

한규섭 서울대 대외협력부처장은 "시흥캠퍼스는 필요성이 인정돼 조성하는 것"이라며 "관악캠퍼스의 공간 여건상 자유롭게 실험하기 어려운 연구 관련 시설 설립을 위해 시흥캠퍼스 설립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정 학년이나 학과 이전, 레지덴셜칼리지 계획은 없다. 시흥캠퍼스에는 대학원을 신설할 것"이라며 "학생들 우려와 달리 오해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대학 상업화 우려에 대해선 "공대에서는 산학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드론·빅데이터·자율주행차 등 실험도 하지 말라는 소리냐"라고 힘줘 말했다. 옥시 연구용역 보고서 사례는 시흥캠퍼스와는 무관한 '연구윤리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시흥캠퍼스는 10년 전부터 추진된 사업이다. 그동안 수차례 검토를 거친 만큼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학교 측은 판단했다.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으로 이미 약정된 3000억 원을 확보했고, 추가로 1500억 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부지까지 마련했지만 캠퍼스 설립 반대 학생들 탓에 착공을 못하고 있다.

성 총장이 중재안에서 시흥캠퍼스 설립을 담당하는 기획위원회 등에 학생 참여를 보장한 만큼 학생들도 추진기구에 참여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지연된 사업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본관 점거 지속 여부는 오는 9일 열리는 서울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전학대회에서의 성 총장 중재안 수용 논의 결과에 따라 시흥캠퍼스 추진 및 점거농성 학생 징계 여부 등이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준호 서울대 학생처장은 "학교 본부는 일단 학생들과의 대화에 집중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학생들의 정당한 주장은 수용하겠다"며 "어쩔 수 없이 징계 예비 절차에 착수한 바 있으나 징계는 최소화하려 한다. 학생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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