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알맹이 없이 혼선만 빚은 '대미(對美) 통상 대책'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와 관련, 정부가 26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내놓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을 선언한 지 이틀 만에 발빠르게 나선 것이지만, 알맹이가 없는 데다 대책을 놓고 부처 간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발표 내용 중 핵심은 한국이 트럼프 보호무역의 타깃이 되지 않도록 셰일가스 등 미국산 원자재와 산업용 기기, 수송 장비 등 기술집약적 장비 수입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대미 경상수지 흑자를 줄여 미국의 환율 조작국 지정이나 수입규제 등 통상 마찰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 △대미 무역 흑자 규모 200억달러 이상 △한 방향으로 지속된 외환시장 개입(연간 GDP 규모의 2%를 초과하는 순매수) 등을 환율 조작국 지정 기준으로 삼고 해당국을 제재할 방침이다. 한국은 미국과 교역에서 2013년부터 매년 200억달러 이상 흑자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날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 방침에 대해 정부 내에서조차 다른 목소리가 제기됐다. 셰일가스나 항공기 등 수송장비, 산업용기기 등 구체적으로 품목을 적시하고 수입을 늘리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부적절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통상이나 환율 문제를 거론하면서 중국이나 일본은 공개적으로 거론했지만 한국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나서 수입 확대 검토 품목을 공개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우리 패를 먼저 보여주고 협상에 임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때일수록 통상당국은 차분하고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비공개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도 대응책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에서도 정부의 이날 대책 발표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 입장이 이해는 가지만 경제성이 떨어지는 미국산을 무조건 수입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업계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가 오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통상 전문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아직 한국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데도 정부는 지레 겁을 먹은 듯 허둥지둥하고 있다”며 “미국 움직임을 차분하게 분석하면서 치밀하게 대응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주완 경제부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