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왼쪽 여섯 번째)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회동을 위해 모인 각국 정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TPP 탈퇴를 선언하자 이들 회원국은 일제히 미국의 결정에 우려를 나타냈다. 요코하마AP연합뉴스
2010년 11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왼쪽 여섯 번째)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회동을 위해 모인 각국 정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TPP 탈퇴를 선언하자 이들 회원국은 일제히 미국의 결정에 우려를 나타냈다. 요코하마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선언으로 글로벌 무역 환경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국내 기업과 통상당국은 트럼프의 행보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생산만 하던 중견기업까지 미국 수출길이 막힐까봐 현지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TPP 불발’ 당장은 유리하지만

미국의 TPP 탈퇴는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에 호재다. TPP 가입 12개국에 경쟁국인 일본은 들어가 있지만 한국은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분에 국내 기업은 경쟁상대인 일본 기업보다 미국 시장 공략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며 “TPP가 예정대로 시행되면 그동안 한국 기업이 누려오던 혜택 중 상당 부분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TPP 발효 시 한국 수출의 50%를 차지하는 소재 부품 분야에서 한국 제품이 외면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글로벌 제조업체 생산기지가 많은 미국 멕시코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이 한국 부품 대신 일본 부품을 쓸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의 TPP 탈퇴로 한·미 FTA의 재협상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TPP 대신 ‘미국 우선주의’에 초점을 맞춘 양자협정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섬유업체 등도 TPP 탈퇴에 따른 피해가 우려된다. TPP 발효 시 베트남이 최대 수혜국으로 부상해 여기서 생산된 제품이 미국 수출 등에서 혜택을 볼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TPP 탈퇴를 선언하며 이 같은 예상은 빗나가게 됐다.
[트럼프 'TPP 탈퇴'] TPP 가입 안한 한국 괜찮다지만…"한·미 FTA 재협상 우려 커졌다"
◆멕시코 진출 기업 비상

트럼프의 NAFTA 재협상 선언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에 불리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멕시코의 낮은 임금 덕에 많은 한국 기업이 현지 공장을 두고 있다. 이들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된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멕시코에 각각 두 개 이상의 생산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9월 누에보레온주에 공장을 준공했다.

NAFTA 재협상으로 미국이 멕시코 수출품에 관세를 물리면 상당수 기업이 생산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미국 자동차업체인 포드 GM 등은 트럼프 당선 이후 멕시코 투자계획을 철회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미국에 5년간 3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하고 제2공장 설립도 검토 중이다.

◆직접 수출 기업도 타격

한국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견 농기계 생산업체 A사는 최근 미국에서 공장터를 물색하고 있다. A사는 한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이 중 70% 정도를 미국에 수출했다. 하지만 현지 수입업체가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더 이상 구매하지 않겠다”고 하자 부랴부랴 미국에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의 무역정책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국경세 부과”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중국산에 45%, 멕시코산에 35%의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양국에 생산기지를 둔 한국 기업이 큰 타격을 받는다. 중국 멕시코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무차별적으로 국경세를 물릴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박 교수는 “한국은 15개의 주요 시장과 FTA를 맺고 있다는 게 강점”이라며 “FTA 활용도를 높여 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