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의 '중국과 中國' (12) 만만디] 중국인의 여유, 본질은 '실리 추구'
중국말의 만만디(慢慢地)는 ‘느리다’는 뜻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외래어처럼 친숙하다. ‘여유 있다’와 ‘느리다(그래서 불편하다)’라는 모순적인 느낌이 함께 있다. 어쨌든 만만디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중국인의 중요한 특성인 만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중국인들은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고 여겼는데, 덜컥 그 반대인 상황이 생기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만만디는 '선택형 느림'

[류재윤의 '중국과 中國' (12) 만만디] 중국인의 여유, 본질은 '실리 추구'
중국인의 만만디에는 ‘실리주의’와 실리를 담보하기 위한 ‘신중’이 그 저변에 있다. 원하는 것을 실수 없이 그리고 무리 없이 제대로 획득하려다 보니,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렇다고? 그런데, 살펴봐야 할 것이 훨씬 많다면,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나와 상대방의 인정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그 누구의 체면도 손상되면 안 된다. 나와 관계가 없으면, 마땅히 해야 함에도 움직이지 않는다(事不關己高高掛起). 和爲貴(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가능한 한 갈등을 회피하려 하기 때문에, 과감히 처리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이런 등등의 중국식 행위 모형은 겉으로 보기에 ‘느리게만’ 보인다. 하지만, 중국인의 느림은 ‘선택형 느림’이다. 항상 느리기만 한 것이 아님을 들여다봐야 한다.

일본 와세다대의 엔도 이사오 교수는 “‘변화하고 진보하는 것’과 ‘탁월한 결과를 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 이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인(기업)은 속도의 미신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는 최근 만(萬) 가지 변화에 대해서 다변으로, 속도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재빠른 변화(多變)로 만 가지 변화(萬變)에 대응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以不變萬變(불변으로 만변에 대응한다)이라는 말도 있다. 변하지 않는 신중함으로써, 외부로부터의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변화에 대한 대응법에는 이렇게 다변과 불변이 있고, 여러 선택지가 있는데, 중국인은 불변을 선호하는 것 같다.

중국인들과 협상할 때 대부분 느릿느릿한 진도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회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중국인들과의 ‘밀당’은 정말 피곤하다. 우리가 당초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진행은 더디기만 하고, 마무리될 듯하다가도 또 새로운 상황이 생긴다. 또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도 그저 속절없이 늘어지기도 한다. 협상을 해야 하는 우리들은 늘 속이 숯검정이 된다. 그런데 늘 이렇게 느리기만 하면 차라리 나은데, 때로는 갑자기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변화 요인이 없어 보일 때도 있다) 빨라진다. ‘兵貴神速(병법에서는 신속함이 중요하다)’ 또는 ‘夜長夢多(밤이 길면 꿈이 많아진다)’라고 하면서, 지금 바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그치기도 한다.

“작년에는 거의 같은 상황인데 만만디 때문에 정말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빨라야 반 년 정도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1주일에 다 받아 버렸습니다! 말도 안 되지요!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만난 모 회사 투자담당자의 푸념이다. 전형적인 예다. 중국의 만만디를 단순히 ‘느림’이라는 일원(一元)적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만만디의 ‘느림’이라는 앞면은 ‘빠름’이라는 뒷면을 감추고 있다. 공격형 축구팀과 달리, 수비형 팀은 공격을 서두르지 않는다. 웬만하면 전진 패스를 할 만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골을 넣을 마음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은 상황이 만만치 않으니까 우선 수비에 치중하지만 언젠가 공격을 해서 골을 넣을 심산이다.

'속공'을 감춘 수비형 전술

중국인의 만만디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싶다. 어떤 목적을 가진 행동을 할 때, 당장 취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늦추는 경우는 없다. 물론 ‘우리가 보기에’ 일부러 늦추거나 느릿느릿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단지 ‘우리가 보기에’ 그런 것에 불과하다. ‘중국인들이 보기에’ 빨리해야 유리하면, 당연히 빨리한다. 중국인의 만만디가 ‘느림과 빠름’의 하이브리드 개념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공격형이든 수비형이든 간에, 결국 골을 넣기 위함이다. 그래서 중국 만만디의 본질은 결국 “실리 추구”라고 말하고 싶다.

실리 앞에서는 광속도로 일한다. 중국의 만만디에서 때론 매우 빠른 행동이 보이는 것을 두 개의 모순이라고 보면 안 된다. 오히려 하나의 ‘실리 추구’라는 통일성에서 존재하는 양면이라고 봐야 한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