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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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 국장이던 A씨는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 수석전문위원으로 갈 때는 부처에 사표를 쓰고 나오기 때문에 그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란 예상까지 나왔다. A씨는 그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해 창조경제 정책을 만드는 파트에 몸담았다. A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해당 부처의 1급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뒤 핵심 보직을 두루 거쳤다.

◆“가장 적극적인 건 국장급”

세종시 관가에서는 최근 “간부들을 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온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자 여의도 정치권에 줄을 대기 위해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어느 국장은 벌써 특정 후보 캠프와 연결됐다”는 식의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대선이 있는 해에는 A씨처럼 ‘역전 만루홈런’을 노리고 대선 캠프를 기웃거리는 관료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 몸담았던 정치권 인사는 “부처 공무원 중 가장 많이 줄을 대려고 하는 사람은 국장급”이라고 말했다. “다음 정부에서 실장으로 승진하지 못할 경우 장·차관 자리는 꿈도 꾸기 힘들어 1급 승진을 중요한 승부처로 본다”는 게 한 경제부처 관료의 설명이다.

A씨처럼 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여당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무원 신분을 유지한 채 비밀리에 캠프에 참여한다. 공무원은 선거 중립 의무가 있어서 공식적으로 특정 후보 캠프에 참여할 수 없다.

정치권 관계자는 “캠프에서 정책 관련 회의를 할 때 특정 공무원에게 ‘현안 설명을 해달라’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며 “해당 공무원은 마지못해 오는 척하지만 이미 캠프와 연결돼 있는 사람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 측에서도 공무원은 꼭 필요한 존재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교수 등 전문가 출신이 캠프에 포진해 있다고 해도 실현 가능성 있는 정책을 마련하려면 공무원의 손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거시정책과 예산 세제를 다루는 기획재정부 공무원, 대선의 핵심 이슈인 복지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대선이 있는 해에 인기가 상한가”라고 설명했다.

◆고향 따라 서는 줄 달라

공무원이 어느 후보와 묶일지는 보통 고향과 출신 학교에 따라 좌우된다. A씨도 ‘정통 TK(대구·경북)’ 라인으로 분류돼 박근혜 캠프에 합류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각종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등 야권 후보가 분전하자 호남이 고향인 공무원들이 상대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호남 출신인 경제부처의 B실장은 유력 야당 인사가 해당 부처 장관일 때 가깝게 지낸 인연으로 “정권이 바뀔 경우 핵심 실세로 떠오를 것”이란 말이 나돈다.

반대로 영남 출신 고위 관료들은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는 게 관가 분위기다. 한 고위 관료는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두 개로 쪼개진 데다 지지율도 야당에 비해 훨씬 낮게 나오면서 여당과 가까운 공무원들은 어디로 줄 서야 할지 막막한 심정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요즘 관료들한테도 새누리당이 기피 대상”이라며 “그나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여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인데 새누리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캠프에서 연락이 올 것에 대비해 선거용 정책 아이디어를 준비해 놓은 관료들도 있다. 여러 캠프에서 제의를 받고 어느 캠프에 합류하는 게 유리할지 저울질하는 공무원도 있다는 후문이다. “선거철이 되면 현직 공무원뿐 아니라 전직 관료들도 캠프에서 혹시나 전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해 휴대폰만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 전직 관료는 전했다.

◆금배지 다는 관료들

공무원 때 정치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금배지’를 다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현 정권에서 장관을 하다 여당 공천을 받아 20대 국회에 입성한 경우만 해도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등이 있다.

야권에서는 4선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3선인 장병완 국민의당 의원(전 기획예산처 장관) 등이 대표적인 고위 관료 출신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행정고시 출신은 아니지만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