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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장은 언제나 열려 있다.”

[김현석의 View] 중국의 차 배터리 몽니 1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기조연설에서 밝힌 말이다. 하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박해를 받고 있는 한국 산업계는 이런 시 주석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LG화학, 삼성SDI 등 중국 시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배터리 업계가 그렇다.

배터리 업계가 중국에서 배척당하기 시작한 건 1년여전인 작년 1월14일이었다. 지난 1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작년 1월 14일 중국의 산업정책을 맡고 있는 공업정보화부는 “삼원계 배터리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 버스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국내 업계엔 청천벽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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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국내 업계가 삼원계를 만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 전기차, 특히 시장이 급성장중인 전기 버스 시장을 노리고 2015년 10월 각각 중국 난징과 시안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완공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당시 대기오염을 막고 전기차 산업을 키우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줬고 2015년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하이브리드 등 포함)이 됐다. 2016년엔 50만7000대의 전기차가 팔려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53% 증가했다. 이런 시장을 보고 수천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짓자마자 사실상 판매 금지를 당한 것이다.

중국은 삼원계 제외 근거로 2015년 12월 홍콩에서 발생한 전기버스 배터리 폭발사고를 들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듣기엔 불투명한 점이 많았다. 우선 삼원계는 대다수 중국 배터리 업체가 만드는 리튬인산철보다 앞선 기술이다. 이론적으로 폭발가능성은 있지만 에너지 효율이 높아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은 대부분 삼원계 배터리를 제조해왔다. 업계에선 앞선 한국 업체들을 중국 시장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라는 해석했다. 중국은 2015년 5월 ‘중국제조2025’라는 산업발전계획을 발표하고 신에너지차와 배터리를 집중 육성할 산업으로 선정했다.

LG화학은 난징공장 준공 당시 중국 16개 업체로부터 100만대분 이상을 수주했으며 2020년까지 생산능력을 4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업계가 어려움에 빠지자 3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직접 중국을 찾아가 재고를 요청했지만 중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4월엔 경악할 만한 추가 규제가 나왔다.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제도였다. 이 규제는 수백여개 난립된 배터리 업계를 정리하겠다는 의도로 2015년 5월 발표됐다. 발표 당시엔 보조금과 연계되지 않았으나, 중국 언론은 지난해 4월부터 정부가 이 제도를 보조 연계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인증받지 못한 업체의 배터리는 보조금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관영인 증국 언론의 보도는 사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았고 LG화학과 삼성SDI는 비상 상황이 됐다. 이들은 그 전까지 부정기적으로 진행되어온 3차 인증까지는 신청도 하지 않았고 정보에 빠른 중국 업체 20여곳만 인증을 받은 상태였다. 전기버스뿐 아니라 모든 전기차에서 배제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중국 전기차 판매량.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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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과 삼성SDI는 부랴부랴 준비해 4차 인증을 신청했다. 하지만 6월말 발표된 4차 인증 결과에서 30여개사가 새로 인증을 받았지만 이들은 탈락됐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중국에선 배터리를 팔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업계엔 5차 인증이 9월께 공고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10월말이 돼도 공고는 뜨지 않았다. 그새 한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만들거나 만들 예정이던 장화이자동차, 상하이자동차 등이 잇따라 해당 모델 생산을 중단했다. 7월 발표된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이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졌다. LG화학 배터리를 쓴 전기차를 내놓으려던 현대자동차도 고민에 빠졌다. 한국 배터리를 쓰면 보조금을 받지못해 중국 시장에 발붙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는 BMW 폭스바겐 GM 포드 등 한국 배터리를 써온 글로벌 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자국 배터리 육성 계획은 치밀했다.

그러던 11월 중국 정부는 새 모범규준 인증 제도를 들고 나왔다. 수정안은 리튬이온전지 최소 연간 생산능력을 0.2GWh(기가와트아워)에서 8GWh로 40배 높이는 등 요건을 높였다.

2017년 초까지 의견 수렴을 한 뒤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삼성SDI의 시안 공장과 LG화학의 난징 공장의 생산능력은 2~3GWh수준으로 새 기준에 못 미친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이 기준을 넘는 곳은 BYD 등 두 곳에 불과해 수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 제도를 보조금과 연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와 일말의 희망을 갖게했다.

12월엔 중국 정부가 2017년부터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버스도 보조금 신청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삼원계 규제를 1년만에 푼 것이다. 중국은 대신 배터리 업체가 ‘전기버스 안전기술조건’을 만족하는 제3기관의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올 1월 들어선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을 보조금과 연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국 배터리 업계를 옥죄된 명시적인 규제인 삼원계 규제와 모범규준 인증을 1년만에 모두 거둬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한국 배터리 업계의 어려움이 사라질 것으로 보기엔 이르다. 중국의 움직임은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제소될 수 있는 명시적인 차별적 규제는 없애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로 전환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시 주석의 다보스 연설을 앞두고 세계로부터 비난을 피하기 위해 명시적인 규제들을 없앴을 수도 있다. 실제 삼원계 규제는 없앴지만 보조금을 타려면 LG화학, 삼성SDI가 중국 당국이 인정하는 제3기관으로부터 전기버스 안전기술조건을 만족하는 증명서를 받아야한다. 여기서 불합격을 주면 보조금 수혜를 입을 수 없다. 또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지난해 12월29일 오전 2016년 5차 보조금 대상 목록에 95개사 498개 모델을 올린 뒤 반 나절만에 LG화학 배터리 탑재 4종, 삼성SDI 1종 등 한국 배터리를 탑재한 5개 모델을 삭제하는 등 차별적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시 주석의 발언 다음날인 18일(현지시간) 미국의 윌버 로스 상무장관 내정자는 “중국은 자유무역을 실천하기보다는 말을 더 많이 하는 나라”라며 밝혔다.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도 “중국이 자유무역을 강조하면서 한국 기업에 사드 보복을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미하엘 클라우스 주중 독일대사는 두터운 진입 장벽, 과도한 기술이전 요구, 허술한 지식재산권 보호 등을 꼬집으며 “중국은 언행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세계로부터 존경받으려면 진정한 자유무역을 해야한다. 중국이 배터리 비관세 장벽을 무너뜨릴지 아니면 만리장성처럼 더 쌓아나갈 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