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21일 새벽 법원에서 발부됐다.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성창호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지난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국정농단’ 수사에 제동이 걸렸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로써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게 됐다. 특검팀은 앞서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정관주 전 문체부 제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중 김 전 수석의 영장만 기각되고 나머지 3명은 구속됐다.

특검팀은 조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근무할 당시 김 전 실장의 지시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는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문체부에서 다시 여러 산하기관으로 전달돼 집행됐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이들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리스트의 존재를 모른다거나 관여한 적 없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것 역시 위증이라고 판단했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이나 관리에 반대하거나, 이에 비협조적인 문체부 관계자의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의 ‘설계자’이자 ‘몸통’으로 지목된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구속됨에 따라 특검팀이 의혹의 윗선을 밝혀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향후 특검팀은 박근혜 대통령이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지시를 내렸다거나 보고를 받고도 이를 묵인했다는 정황을 잡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이들의 구속이 박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도 나온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면 탄핵사유중 하나인 ‘요직에 대한 인사전횡 등 권한남용’ 판단에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헌법상 사상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훼손한 권한남용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날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재학 중 부당하게 성적 특혜를 준 혐의를 받는 이인성 의류산업학과 교수도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교수의 영장실질심사 결과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업무방해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씨의 이대 입학·학사 특혜 의혹과 관련해 학교 관계자가 구속된 건 류철균(필명 이인화)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남궁곤 전 입학처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에 이어 4번째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