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교토 니조성
일본 전국시대의 마지막 영웅 도쿠가와 이에야스. 온갖 곡절 끝에 천하를 손에 넣은 그는 에도(도쿄)에 막부를 세우고 초대 쇼군이 됐다. 그러나 명목상 수도는 덴노(天皇)가 사는 교토였다. 그에게는 교토에 거처할 곳과 집무공간이 필요했다. 덴노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관리(?)도 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1603년 완공한 것이 니조성(二條城)이다.

성이라고는 하지만 요새화된 궁전에 가깝다. 교토 귀족들의 세련된 취향과 달리 화려한 장식으로 부와 권력을 과시했다. 쇼군 시대 권위의 상징이랄까. 성의 중심은 초기에 세운 니노마루(二の丸)와 나중에 완공한 혼마루(本丸)의 복합체 두 개다. 니노마루는 거대한 단독건물처럼 보이지만 여섯 동이 긴 복도로 이어져 있는 구조다. 33개의 방에 각양각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건물에 깔린 다다미만 800만장에 이른다고 한다.

기다란 나무 복도를 걸어가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암살자나 외부인의 잠입을 막기 위해 특수설계한 보안장치다. 마룻바닥 아래 받침목에 여러 개의 못을 박아 사람이 밟으면 나무판 밑의 못들이 움직이며 특유의 소리를 내게 했다. 이 소리가 휘파람새 울음과 비슷하다 해서 ‘꾀꼬리 소리 복도’라고 부른다. 서양인들은 ‘나이팅게일 마루’라고도 한다.

니조성이 더 유명해진 것은 쇼군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이곳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867년 개화파에 밀려 이곳에서 40여 명의 중신을 모아 놓고 통치권을 덴노에게 반환하기로 결정한 현장이다. 1603년 이에야스가 이곳에서 덴노로부터 쇼군 임명을 받은 지 264년 만이다. 700년 가까운 무사정권의 종말이자 쇼군 역사의 폐막을 알린 곳이기도 하다. 이후 성은 황실로 넘어가 ‘니조 별궁’으로 불렸고, 1939년 교토부로 소유권이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 니노마루에 그제 세계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후지필름이 니노마루 건물 안쪽 전시실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연 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역사를 열겠다는 의지의 표현. 고모리 회장은 “급변하는 소비자 수요를 읽지 못하면 150년 전 에도 막부처럼 언제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며 “게임을 바꾸는(game change)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2002년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글로벌 로드쇼를 개최했던 것과 오버랩된다. 동서양 고궁을 오가는 첨단 디지털 발표회라… 비즈니스맨들의 아이디어 경쟁은 끝이 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