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빌미 삼아 중국이 벌이고 있는 통상 보복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중 간 양자 및 다자 채널을 통해 중국에 적극적으로 통상 관련 문제를 제기하고 배터리 등 분야별 소위원회를 구성해 동향 파악에도 신속히 나서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이날 저가 공세를 통해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중국산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물리기로 결정해 양국 간 통상 분쟁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보복에 뿔난 정부…본격 대응 나선다
◆분야별 소위 만들어 점검

정부는 이날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범정부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최근 가시화되는 중국의 사드 관련 통상 보복에 대한 대응 체계를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수입 규제 조치 등을 잇따라 도입하면서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다. 한국산 화장품 19종에 대해 무더기로 수입을 불허하는가 하면 한국 3개 항공사가 신청한 전세기 운항도 허가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한국산 폴리실리콘에 대해 반덤핑 재조사에 착수하고 지난달 말 광섬유 반덤핑관세를 5년 연장한 것도 ‘사드 보복’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른바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을 통해 한국산 드라마·영화·예능프로그램의 방영과 한국 연예인의 광고 출연을 금지하려는 움직임도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중국의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한·중 통상점검 TF’ 내에 업종별 소위를 구성하고 사안별로 관련 동향을 신속히 점검해 업계와 소통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주중 대사관을 중심으로 KOTRA, 무역협회 등 중국에 있는 무역투자 유관기관 회의를 열어 무역 보복 관련 동향도 수시 점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위원회 등 양자 채널과 세계무역기구(WTO) SPS(위생검역)위원회, TBT(기술장벽)위원회 등 다자채널을 통해서도 중국에 통상 보복 관련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기로 했다.

◆중국산 인쇄판 반덤핑 판정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열고 중국산 오프셋인쇄판에 5.73~10%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지난해 국내 조판업체인 제일씨앤피가 신청한 중국산 오프셋인쇄판 덤핑 여부 조사를 한 결과 국내 산업의 실질적 피해를 추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무역위는 이 같은 내용을 관세 부과 결정권을 가진 기재부에 전달했다.

오프셋인쇄는 금속 인쇄판에 칠해진 잉크가 고무 롤러를 통해 종이에 묻도록 하는 인쇄기법으로, 주로 달력이나 잡지 등을 대량 인쇄할 때 사용한다. 국내 오프셋인쇄판 시장 규모는 약 1300억원이고 중국산 점유율이 70%에 달한다.

무역위 관계자는 “중국산 오프셋인쇄판의 덤핑 사실과 그로 인한 국내 산업의 실질적 피해를 추정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조사 기간 발생할 수 있는 국내 산업의 피해를 막고자 잠정 덤핑방지관세 부과를 건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정은 정부가 범정부 비상경제대응 TF 회의를 열고 중국의 사드 관련 통상 보복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이뤄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1년 전부터 조사가 진행된 사안”이라며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무역위는 향후 3개월간 현지실사, 공청회 등 본조사를 한 뒤 덤핑방지관세 부과 여부를 최종 판정할 예정이다.

이상열/이태훈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