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가을 실리콘마이터스를 찾은 국세청 조사원은 어리둥절했다. 이 회사가 특정 부문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어서였다. 재무 자료를 샅샅이 뒤졌지만 잘못된 점은 찾지 못했다. 조사원이 주목한 건 연구개발(R&D) 비용이었다.

◆직원 60% 설계·개발 인력

'반도체 팹리스업체' 실리콘마이터스 "전력관리 반도체 '글로벌 톱' 도약"
실리콘마이터스는 매년 매출 대비 20% 이상을 R&D에 쓰고 있다. 대기업보다 평균 15배, 벤처기업보다도 10배 많다. 올해는 작년에 이어 R&D 투자 비중이 매출 대비 25%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사진)는 “기술력은 중소기업이 글로벌 기업들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며 “매년 수백억원을 차세대 반도체 설계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7년 설립된 실리콘마이터스는 글로벌 기업들이 점유하고 있는 전력관리통합반도체(PMIC) 분야에 도전장을 던진 지 10년 만에 세계 1위를 노리고 있다.

'반도체 팹리스업체' 실리콘마이터스 "전력관리 반도체 '글로벌 톱' 도약"
실리콘마이터스는 자체 공장 없이 반도체칩을 생산하는 팹리스업체다. 핵심 설계만 직접 하고 나머지는 위탁생산하는 방식이다. 주력 제품인 PMIC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내 전력 공급을 제어하는 반도체칩이다. 크기가 작아지고 있는 스마트기기의 성능과 효율을 높이기 위한 필수 부품이다. 허 대표는 “10년 전 다섯 명이 모여 자본금 6억원 회사로 출발했다”며 “첫해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 전력관리칩을 생산해 수출한 것이 5억원에 불과했는데, 지난해에는 매출 규모가 2000억원으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PMIC 설계 분야는 원래 미국 맥심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 전 세계 3~4개 기업이 독차지하고 있던 영역이다. 실리콘마이터스는 설비투자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대신 모든 역량을 첨단 설계에 집중했다. 직원 284명 중 절반이 넘는 182명을 설계·개발 전문인력으로 꾸렸다. 끊임없는 기술투자 덕분에 작년에는 대한민국 기술대상을 수상했다. 이 회사가 높은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내자 국내외 업체로부터 인수합병(M&A)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구동칩 반도체 설계 역량 집중”

승승장구하던 실리콘마이터스에도 부침은 있었다. 올라만 가던 매출이 2014년에는 아래로 꺾였다. 디스플레이 시장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탓이었다. 허 대표는 “당시 디스플레이 업체의 생산공정 전환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경쟁자들에게 뒤처졌던 것이 아직도 아쉽다”고 밝혔다.

전력관리칩에만 편중된 매출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허 대표는 디스플레이 구동칩 분야 설계에 주목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구동칩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서 전문 업체인 와이드칩스도 인수했다. 허 대표는 “기존 전력관리칩에 이미지 구동칩까지 더해지면서 종합적인 솔루션 공급이 가능해졌다”며 “조만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의미 있는 결과물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샤오미 등 중국 정보기술(IT) 기업과의 거래도 늘려 가고 있다. 글로벌 영업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 상하이, 선전 등에 디자인센터와 영업·지원 센터를 운영 중이다.

허 대표는 “중국 선도 업체들과 지난해부터 일부 품목 공급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아직 전체 매출 대비 비중은 10% 미만으로 크지 않지만 올해는 비중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