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진정한 과학수사, DNA 감정기법의 완성을 향해
2015년 10월, 마산 무학산에서 여성 등산객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누군가에 의해 목 부분에 치명상을 입고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곳은 평소 시민들이 많이 찾던 곳으로 지역에 큰 충격을 줬는데 6개월이 지나도록 범인은 검거되지 않았다. 경찰은 다시 한번 피해자 의류 등의재감정을 대검 과학수사부에 의뢰했는데 대검 DNA 감정팀은 범행 장면을 가상해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고 신속한 감정을 통해 피해자의 장갑 등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를 확보, 가해자를 극적으로 검거할 수 있었다. 이처럼 DNA 수사는 이제 과학수사의 핵심이 됐다.

DNA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생체 내 화학물질로 A, T, G, C라는 네 종류의 염기가 무작위로 선택돼 일렬로 연결돼 있다. DNA 감정은 사건 현장에 남은 땀, 혈흔, 정액 등에서 DNA를 분리한 뒤 특정 부분을 분석해 그 생물학적 증거물이 누구의 것인지를 밝혀내는 과학수사 기술을 말한다. DNA 감정은 그 결과가 매우 정확해 DNA형이 같은 또 다른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0’의 확률로 수렴하는데 이와 같은 높은 정확성으로 ‘진정한 과학수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극미량의 시료만 있어도 감정이 가능해 강력사건뿐 아니라 형사사건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수표 절도사건의 도난 수표에서 채취한 흔적에서 범인의 DNA를 찾아내 피의자를 특정한 경우도 있다.

이런 DNA 수사는 국제적으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DNA 감정 분야에서는 국제법유전총회(ISFG)가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데 이 총회가 아시아 최초로 오는 8월28일~9월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 DNA를 이용해 머리카락 색깔이 금발인지 검은색인지, 눈동자가 파란색인지 갈색인지를 추정하는 소위 DNA 몽타주 기술은 근래의 DNA 감정에서 블루오션으로 각광받고 있어 이에 대한 많은 연구발표가 기대되고 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말처럼 피해자의 옷에서 검출된 특정인의 DNA가 범행과정이 아니라 다른 과정에서 묻었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기술, 즉 DNA가 어떤 방식으로 증거에 남게 됐는지 원천을 확인하는 기술 등도 발전하고 있어 DNA 증거의 관리나 무결성 문제와 연결한 연구발표도 있을 예정이다.

DNA 수사에서는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DNA를 확보했지만, 이와 대조할 수 있는 용의자의 DNA 확보가 불가능하다면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2010년부터 강력범죄 등 11개 범죄유형의 형확정자, 구속피의자, 현장증거물에서 DNA를 채취해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 운용하고 있다. 현재 DNA DB에 수록된 DNA 수는 약 26만건이며, DNA DB 검색을 통해 해결한 미제사건 수는 5000여건에 이르고 있다. 마산 무학산 등산객 살인사건도 피해자의 장갑 등에서 검출된 범인의 DNA를 토대로 DNA DB에서 일치한 사람을 확인해 범인을 검거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DNA 감정이 과학수사 기법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다. 이승환 대검 과학수사부 법과학연구소장은 한국 최초로 DNA 감정을 도입하는 데 필요한 자체 기술을 확립했다. 2010년 범죄자 DNA DB 구축을 가능케 한 DNA 감정 분야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DNA 감정 및 DB의 활용도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DNA 분석마커를 13개에서 20개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올해 실행될 전망이다. 이는 미국 FBI도 올초부터 실행한 것으로 우리는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의 DNA 감정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한 과학수사라 할 수 있는 DNA 감정기법은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며, 우리의 과학수사도 그 여정을 함께할 것이다.

김영대 <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