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삼성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도주 우려가 없고 주요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내주지 않았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 부회장이 최순실 씨 측에 430억원대 뇌물을 주고 부정한 청탁을 했다”며 영장을 청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작지 않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애초부터 무리한 영장”

법조계에서는 시간과 여론에 쫓긴 특검이 무리하게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패착’이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특검이 뇌물을 받은 사람으로 지목한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은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뇌물공여자로 판단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신청한 게 악수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회장 측이 ‘강요에 의해 줬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어 처음부터 다툼의 여지가 큰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삼성 측이 ‘검찰의 압수수색이 세 차례나 이뤄졌고 이 부회장이 출국금지돼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고 했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구속영장을 신청한 게 무리수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검은 2015년 7월25일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독대 당시 ‘말씀자료’에 나온 ‘임기 내 삼성 경영권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는 내용을 부정청탁의 증거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별다른 뜻 없이 의례적으로 나눈 얘기였을 가능성이 커 경영권 승계의 대가를 직접 언급한 법적 증거로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불구속=무죄’라는 인식이 강해진 점도 특검이 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검찰 출신인 한 변호사는 “‘촛불민심’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은 특검의 파죽지세가 무리한 영장 청구를 불러온 것 같다”고 말했다.

◆SK·CJ 등으로 수사 확대할 듯

이 부회장의 신병확보를 박 대통령 뇌물죄를 겨냥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았던 특검은 출범 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특검은 지난달 21일 수사 시작을 알리는 현판식과 동시에 국민연금공단을 압수수색할 정도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수사에 화력을 집중해왔다. 이 부회장이 최씨 측에 거액의 뇌물을 줬고 박 대통령은 최씨와 ‘경제적 공동체’라는 점을 특검이 규명하려 했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특검은 앞으로 이 부회장을 불구속 수사하면서 SK와 롯데, CJ 등 다른 ‘부정청탁’ 의혹 기업으로 전선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18일 브리핑에서 “이 부회장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대기업을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인 한 변호사는 “영장 기각이 곧 무죄는 아니다”며 “특검이 현재의 방향대로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부회장 영장 기각이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영향을 줄지도 관심을 모은다. 아직까지는 영장 기각이 헌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은 지나치다는 분석이 많다. 영장 기각은 원칙적으로 유·무죄와 관련이 없는 만큼 헌재가 이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은 개인에 관한 것일 뿐”이라며 “대통령 탄핵심판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본다”고 했다.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법원이 선택한 ‘신중론’이 헌재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박한신/고윤상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