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가는 오바마, 오는 트럼프'의 비망록
퇴임을 하루 앞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가 화제다. 보름 전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55% 지지율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44%)를 압도했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저 지지율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해야 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취임하기도 전에 GM 월마트 등 미국 기업들은 물론 소프트뱅크 알리바바 현대자동차 바이엘 등 외국 기업까지 줄 세워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서약을 받아내고 있는 트럼프보다 오바마의 인기가 높은 이유가 뭘까. 뉴욕타임스는 루스벨트와 케네디 이후 최고로 평가받는 특유의 달변에 더해 ‘기품’을 꼽았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개인은 물론 측근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은 그를 향해 쏟아진 ‘미국에 자부심을 갖게 해준 지도자’, ‘신념을 절대 잃지 않은 쿨한 대통령’ 등의 독자들 멘트도 소개했다.

재임기간에 평균 경제성장률 1.6%로 1929년 취임한 허버트 후버 이후 처음으로 3%를 찍지 못했고, 미국 역사상 가족휴가 비용(8500만달러·약 1020억원, 맥클래치 보도)을 가장 많이 쓴 대통령이라는 눈총도 받았지만, 두 배 넘게 오른 주가와 실업률 하락(10%→4.7%) 등의 치적(治績)을 평가받고 있다.

오바마에게 쏟아지고 있는 갈채를 보노라면, 그가 두 달 전 치러진 선거에서의 패장(敗將: 오바마가 속한 민주당의 대통령 및 의회선거 패배)이 맞는지 어리둥절해진다. 오바마는 지난 11일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 고별연설에서 8년 전 슬로건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와 함께 “우리는 해냈다(Yes, we did)”는 웅변으로 지지자들에게 감동과 환호를 선물했다.

하지만 작년 11월8일 선거 결과는 “해냈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대통령 외에 연방 상·하원 의원, 50개 주(州)의 지사(知事)와 각급 의회 의원들을 동시에 선출한 이날의 결과는 오바마가 이끈 민주당의 ‘대(大)참패’였다. 정치 문외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물리친 이변에 가려져서, 민주당의 더 많은 패전(敗戰)이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오바마 취임 당시 257석이던 민주당의 연방하원 의석이 193석으로 줄어들었고, 57석으로 1970년대 이후 최다였던 상원 의석은 48석으로 곤두박질했다. 8년 전 29개 주를 지배한 민주당 소속 주지사는 15개 주로, 50개 주 상·하원 가운데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차지한 곳은 60개에서 30개로 반토막났다. 95년 동안 민주당의 철옹성이던 켄터키주 하원이 공화당에 넘어갔다거나, 남부 주에서 민주당이 지배하는 의회가 전멸했다는 기록은 더 큰 뉴스들에 묻혀버렸다.

킴벌리 스트래슬 월스트리트저널칼럼니스트가 “나의 치적은 선거 결과가 말해줄 것(My legacy is on the ballot)”이라고 했던 오바마의 선거 두 달 전 발언을 끄집어내면서 “선거 결과는 오바마가 펼친 통치와 정책이 모든 단계에서 냉혹한 심판을 받았음을 웅변한다”고 쏘아붙일 만도 했다.

‘큰 정부’를 추구하는 민주당의 개입주의 노선에 충실해온 오바마는 “시장의 역동성을 질식시킨다”는 비판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의료 금융 환경 에너지 등 많은 분야에서 규제의 고삐를 조여 투자와 일자리 창출 기회를 날렸다는 지적도 무시했다. ‘11·8 대참패’는 이런 것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심판이었다는 얘기다.

아리송한 것은 오바마가 이렇게 처절한 ‘심판’을 받았음에도 개인적인 인기가 여전한 반면, 선거에서 이긴 트럼프는 ‘비호감’ 이미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세련되고 유려한 오바마와 달리, 상대방의 속을 뒤집어놓는 트럼프의 공격적 언변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주요 정책 구상을 트위터를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소통방식도 비판을 받고 있다. ‘구태(舊態)’를 깨부수는 정치 혁신이 중요할수록,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설득력’의 힘이 함께 해야 함을 절감하게 된다.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