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림만 그리려다…'디테일' 놓친 중소기업 정책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성과’란 단어를 유독 많이 쓴다. 지난 17일 새해 업무계획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자리에서도 그랬다. “지원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겠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나왔다. 궁금했다. 그동안 중소기업을 지원해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자료를 뒤져보니 성과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중소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만 확인했다. 생산성은 대기업의 30%에도 못 미쳤다. 임금은 대기업의 딱 절반 수준이었다. 이익률 등 수익성 지표 또한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대기업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주 청장이 강조한 ‘성과’는 역설적으로 “그동안 성과가 많지 않았다”는 자기 고백이었다.

전문가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게 있었다. “중소기업 정책이 너무 큰 그림 위주로 짜였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될 성싶은 분야를 선정하고 예산 등 자원을 집중했다. ‘창조경제’, ‘청년 창업 활성화’ 등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고 진행됐다. 전형적인 ‘하향식’(top-down) 정책이었다.

공무원들은 생색 나는 큰 정책에 집중했다. 이 탓에 ‘작은 그림’은 무시되거나 버려지는 일이 많았다. 산업 현장에서 나오는 ‘소소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인색했다. 중소기업 각각이 필요한 것과 정부 지원 간 틈이 벌어졌다. 기업인들이 “정부는 지원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정작 가장 필요한 것을 해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주된 이유가 됐다.

얼마 전 만난 신광수 웅진에너지 사장 얘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신 사장은 올초 다녀온 독일 고객사 얘기를 들려줬다. 이 고객사 공장에 갔을 때 그의 눈에 띈 게 있었다. 기계마다 달려 있는 전기 계량기였다. “뭐하러 기계마다 전기 사용량을 측정하느냐”고 그가 물었다. “생산 기계에서 쓰는 전기 요금은 더 싸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공장 안에서도 사무실, 생산설비, 주차장 등 용도별 전기 요금이 다 다르다는 설명이었다. 산업용 전기는 뭉뚱그려 요금을 내는 한국과 달랐다. 신 사장은 “이런 게 바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조 현장 분야를 매우 세부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정책이란 그물을 지금은 촘촘하게 할 때다. 그물망을 듬성듬성짜면 큰 고기를 잡긴 좋아도 작은 고기는 틈으로 다 빠져나간다. 신 사장도 “정부 지원 정책의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이 말을 ‘디테일하게’ 들었으면 한다.

안재광 중소기업부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