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앵커 스토어
앵커(anchor)는 배의 닻을 뜻한다. 정박한 선박이 움직이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것. 알래스카 주도 앵커리지(Anchorage·정박지)의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군사적으로는 방어선의 주요 지점, 스포츠에서는 릴레이 경주의 최후 주자, 방송에선 종합 뉴스 진행자를 뜻한다. 이런 의미가 확장돼 설치물을 단단히 고정하는 보조장치, 암벽이나 빙벽 등반 때 자일을 매어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라는 뜻도 갖게 됐다.

시장에서는 대형 쇼핑센터에 손님을 끌어들이는 유명 상점을 가리킨다. 어떤 상권을 대표하는 상징 점포나 대형 상가의 중심이 되는 핵심 점포, 앵커 스토어(anchor store)가 그것이다. 신축건물에 멀티플렉스 극장이나 대형마트를 앞다퉈 유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타벅스가 입점한 건물에 사람이 몰리는 ‘스타벅스 효과’까지 생겼다.

최근에는 대형 서점이 앵커 스토어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쇼핑과 음식, 휴식 등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하면서 유동인구를 불러들이고 있다. 2년째 미분양으로 골치를 앓던 서울 합정동 상가에 교보문고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빈 점포의 절반(124개)이 순식간에 분양된 것도 이 덕분이다. 경기 수원 광교신도시 상가와 일산의 고양종합터미널 역시 ‘교보문고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대형 서점의 인기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라이프스타일형 공간이라는 점이다. 여가 시간을 알차게 보내면서 직·간접 체험까지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 정보의 거점이기 때문이다. 일본 인기서점 쓰타야, 대만 청핀서점, 미국 반스&노블 등도 그렇다. 쓰타야 서점엔 카메라점이나 애견숍, 수입가구점, 피부미용클리닉, 여행사까지 들어 있다.

앵커 스토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념으로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가 있다. 어떤 기업이 인기 있는 자사 브랜드를 깃발 삼아 체험마케팅 등 판촉활동을 펴는 주력 매장이다. 각종 스포츠를 체험하고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제품까지 살 수 있는 나이키의 뉴욕 매장 등이 그런 예다. 해군 함대에서 깃발을 달고 지휘하는 기함(旗艦·flagship)에서 따 온 용어다. 특정 회사의 정체성 홍보라는 점에서 주변 상권 전체에 영향을 주는 앵커 스토어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닻’이든 ‘깃발’이든 중심과 활력이라는 의미에선 다르지 않다. 닻의 역할은 풍랑이 거셀수록 더 중요해진다. 나도 잘되고 남도 잘되게 하는 이들 핵심 점포에 부디 ‘장사의 신’이 함께 임하시길!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