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최저…'링깃화 급락' 방어 나선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가 작년 말 이후 급락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링깃화 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인 뱅크네가라말레이시아(BNM)는 링깃화 가치 불안을 종식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 도입을 시사했다. 이미 여러 차례 환율 안정화 방안을 사용했지만 외환시장의 불안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BNM은 지난해 역외시장에서 외환 거래를 금지하고, 기업 수출대금의 75%를 링깃화로 쓰도록 강제하는 등의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를 했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링깃화 안정에 주력”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무함마드 이브라힘 BNM 총재는 지난 13일 “링깃화 가치 안정을 위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수단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 도입할 조치는 자본 통제나 링깃화 가치를 고정시키는 방법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며 “달러를 원하는 사람은 달러를, 링깃을 원하는 사람은 링깃을 살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하겠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새로운 통화안정 수단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링깃화 값은 6%가량 하락했다. 지난달 19일에는 달러당 4.48링깃까지 떨어지면서 1998년 외환위기(달러당 4.71링깃)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신흥시장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신흥국에서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간 점이 링깃화 약세의 이유로 꼽힌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해외 투자자의 투자가 국채에 집중되고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말레이시아를 신흥국 중에서도 취약한 국가로 분석했다.

하지만 이브라힘 총재는 최근의 링깃화 가치 하락이 과도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 링깃화 가치는 말레이시아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특정 수준으로 링깃화 가치를 고정해서는 안 된다”며 “수요와 공급을 재조정해 정상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복되는 외환시장 개입

말레이시아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이후 링깃화 가치 안정을 위한 각종 조치를 잇따라 시행했다. 미국 대선 직후 링깃화 가치가 급락하자 열흘 만에 외국계 은행의 링깃 거래를 금지했다.

외국 은행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국내 규제를 피해 역외시장에서 이뤄지는 역외선물환(NDF) 거래를 통해 링깃화 변동폭을 키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브라힘 총재는 “역외 링깃 거래는 투기적이고 파괴적인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아드난 자히드 BNM 부총재는 “최대 20개 역외은행이 투기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이미 6개 은행으로부터 NDF 거래에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글로벌 금융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도입한 자본통제를 BNM이 다시 들고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앞서 BNM은 지난달 2일 수출기업이 해외 거래처에서 받은 수출대금의 최소 75%를 링깃화로 환전하게 하는 조치도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수출대금을 모두 달러화 같은 외화로 보유할 수 있었다. 기업이 수출대금으로 현지 은행에 보유한 달러화는 900억링깃(약 23조7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