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킹’에서 검사 역을 맡은 배우 조인성.
영화 ‘더 킹’에서 검사 역을 맡은 배우 조인성.
“오랜만에 스크린에 나오는 제 모습에 설레더라고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그만 좀 나왔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자주 나오더군요, 하하.”

배우 조인성(36)이 오는 18일 개봉하는 한재림 감독의 신작 ‘더 킹’(사진)으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2008년 개봉한 영화 ‘쌍화점’ 이후 9년 만이다. ‘더 킹’은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 나게 살고 싶던 검사 박태수(조인성 분)가 ‘실세 검사’ 한강식(정우성 분)을 만나 핵심 라인을 타고 승승장구하고, 이들이 정권 교체를 위해 ‘새로운 판’을 짜다 만나는 위기를 그린다. 조인성은 “태수의, 태수를 위한, 태수에 의한 영화”라고 했다. 1980년대부터 2010년까지 30년에 걸친 방대한 대한민국 현대사를 태수의 인생을 통해 녹여내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조인성을 만났다. “저 여기 앉으면 되나요? 이런 인터뷰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는 설레는 것 같으면서도 여유로웠다.

'더 킹' 조인성 "권력에 눈먼 정치 검사의 욕망, 블랙 코미디로 풀어냈죠"
“영화를 한다면, 드라마에서 다루지 못한 소재를 다루고 싶다는 욕망이 컸습니다. 영화가 무언가를 ‘제시’하는 형태라면, 드라마는 ‘공감’을 중요시하잖아요. 이 작품은 제시와 공감을 동시에 가져갑니다.”

그는 “평범한 검찰 영화였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는 태수가 바라보는 세상을 그린다. 태수는 아버지를 괴롭히는 검사를 보며 ‘권력’을 꿈꾼다.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바뀔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그에 따라 자리가 바뀐다.

“어떻게 보면 태수는 ‘출세욕’을 지닌 평범한 인물이에요. 성공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도덕적으로 이뤄내느냐 마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죠. 우리 현실에는 정의롭지는 않지만, 잠깐 눈 감으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유혹이 있잖아요.”

촬영 당시 생각지 못한 ‘변수’도 생겼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더 킹’이 생각지 못한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들, 최연소 검사로 시작해 논란의 중심에 선 청와대 민정수석, 권력이 샤머니즘에 의지하는 웃지 못할 행태 등 영화는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블랙 코미디’가 현실과 맞닿자 ‘다큐멘터리’가 됐다.

“굿 하는 장면을 찍을 때, 우리끼리 박장대소했어요. 정우성과 조인성이 굿하고 있는 것도 웃기는데, 가장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람들이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샤머니즘과 만난 거잖아요.”

태수는 ‘실세 검사’ 강식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조인성이 선배 정우성에게 가지는 마음도 비슷하다. 그는 “관계 때문에 캐릭터가 더 잘 보일 때가 있다”며 “어린 시절 우성이형의 영화를 보면서 배우에 대한 동경이 생겼는데, 그 덕분에 인물의 성격을 빠르게 잡아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다.

“영화만의 재미가 있어요. ‘표준근로제’ 덕분에 저녁에 시간이 조금 남더라고요. 우성이형을 중심으로 감독님, 배성우형 이렇게 넷이서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면서 그날의 연기를 평가했습니다. ‘어제는 어땠네’ ‘오늘은 애매했네’ 하면서요.”

그는 자신의 20대 모습을 생각하면 “짠하다”고 했다. “영화 ‘비열한 거리’ 이후로 저 자신을 채찍질했던 것 같습니다. 능력은 부족한데, 연기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어요.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 괴로워했어요.”

지금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고 했다.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없고, 상대가 원하는 걸 다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다. 그는 “우성이형처럼 ‘자유로운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배역의 크기를 가리지도 않는다. “역할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이면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