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도 '디젤게이트'…제2 폭스바겐 되나
피아트크라이슬러 자동차도 일부 디젤 차종에 배출가스 조작용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 혐의를 인정하고 미국 정부에 43억달러(약 5조1000억원)에 이르는 벌금을 내기로 합의한 지 하루 만이다. 이번 크라이슬러건이 폭스바겐에 이어 ‘제2의 디젤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PA “미공개 소프트웨어 8개 발견”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12일(현지시간) “피아트크라이슬러 디젤 차종 일부에 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있었다”며 “미국 청정대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차종은 3000cc 디젤엔진을 장착한 2014~2016년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지프 그랜드 체로키’와 픽업트럭 ‘닷지 햄 1500’이다. 위반 차량은 10만4000대에 달한다.

EPA는 “배출가스 조작이 가능한 미공개 소프트웨어가 최소 여덟 개 발견됐다”며 “해당 소프트웨어를 공개하지 않은 것 자체가 심각한 법률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조사 결과 배출량 검사를 통과한 해당 차종은 실제 도로주행 과정에서 대기오염 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을 기준치의 열 배 이상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아트크라이슬러가 배출가스 검사 과정에서 당국을 속이려는 의도로 관련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가 진행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위반 혐의가 인정되면 최고 46억달러(약 5조4000억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날 배출가스 조작 혐의가 보도된 뒤 뉴욕 증시에서 피아트크라이슬러 주가는 장중 한때 전일 대비 18.39% 하락했다.

세계 3위 완성차 업체인 프랑스 르노도 배출가스 배출량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파리 검찰은 13일 르노의 자동차가 시민 건강을 위협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배출가스 제어 문제를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서 협상 유리할까

세르조 마르키온네 피아트크라이슬러 최고경영자(CEO)는 EPA 발표 직후 “어떤 불법행위도 하지 않았고, 검사 조건을 교란하려는 의도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상황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같은 방식으로 배출가스를 조작한 폭스바겐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PA는 지난해 9월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배출량 조작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다.

해당 차량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미국과 유럽, 호주 등지에서 폭스바겐을 상대로 대규모 금액의 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위반 차량을 구입한 소비자에게 175억달러의 합의금을 물어줬다. 이어 지난 11일 미국 정부와 43억달러 벌금을 내는 데 합의했다.

EPA는 폭스바겐 스캔들 이후 비슷한 ‘속임수 장치’를 찾는 조사를 확대했고, 그 과정에서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위반 사실을 적발했다. 제2의 폭스바겐 스캔들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유럽 규제당국도 피아트크라이슬러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기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피아트크라이슬러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 마르키온네 CEO는 혐의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차기 행정부와 협조해 관련 의혹을 해명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연방정부의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차기 EPA 청장으로 지명한 스콧 프루이트 오클라호마주 법무장관도 대표적인 기후변화 회의론자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