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수는 없다…'시니어 강자' 랑거 전성시대
“아직도 스윙을 바꾸고 있다.”

2011년 인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베른하르트 랑거(60·독일·사진)는 “나이가 들어도 무리 없는 스윙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이렇게 말했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변화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 있던 것이다. 그에게 ‘집념의 골퍼’라는 또 하나의 별칭이 붙은 배경이다.

‘시니어투어의 지배자’ 랑거가 PGA 챔피언스투어에서 또다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13일 PGA에 따르면 랑거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투어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에게 주는 잭니클라우스상을 받았다. 2014, 2015년에 이은 3년 연속 영예다. PGA 챔피언스투어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매년 시즌 종료 후 투표를 통해 잭니클라우스상이란 이름이 붙은 올해의 선수를 뽑는다. 지난 시즌 4승을 거둔 랑거는 상금 301만6959달러(약 35억6000만원)를 벌어 상금왕 격인 아널드파머상도 받았다. 또 평균 타수 68.31타를 기록해 이 부문 1위에게 주는 바이런넬슨상까지 거머쥐며 3관왕에 올랐다.

PGA 챔피언스투어는 만 50세 이상 선수가 출전하는 투어다. 하지만 ‘할아버지 투어’란 세간의 말과 달리 톰 왓슨, 마크 오메라, 프레드 커플스 등 PGA투어 전설이 대거 출전하는 곳으로, 우승컵 사냥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2007년 챔피언스투어에 데뷔한 랑거는 이곳에서 29번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랑거는 표정 변화 없는 포커페이스로 유명하다. 성적의 부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다. 그는 1985년 독일 촌놈이란 비아냥을 들으면서 마스터스를 처음 제패한 뒤 “다른 선수의 경기와 성적에 신경쓰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고 말했다. 독일 촌놈이란 별명은 대회가 끝난 뒤 독일 병정으로 바뀌었다.

그보다 유명한 게 퍼팅 그립이다. 왼손을 명치에 대고 오른손은 샤프트 중간 부분 그립을 쥐는, 이른바 랑거그립이다. 평생을 퍼팅 입스(yips)와 싸워왔다는 말을 들을 만큼 혹독한 자기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전매특허다. 아홉 살 때 골프에 입문한 랑거는 그동안 왼손을 내려잡는 역그립, 일반 그립, 집게그립 등 퍼팅 방식만 50여 차례 바꿨다. 지난해부터 몸에 그립의 끝을 대는 ‘앵커링’ 퍼팅이 금지되자 그는 왼손 엄지를 명치에서 살짝 떼는 우회로를 찾아내 규정을 피해 갔다.

몸에 무리가 덜 가는 부드러운 스윙도 강점이다. 허리나 어깨, 엉덩이 등의 관절을 많이 쓰지 않고 몸통 전체를 간결하게 회전하는 방식이다. 어드레스했을 때 클럽 헤드 페이스 각도를 백스윙에서 다운스윙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스퀘어 스윙’으로 몸의 동작을 줄여주는 게 특징이다. 올해로 환갑인 그가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를 280야드 날리고 투어 전체 1위의 그린 적중률(78%)을 자랑하는 비결이다.

그는 아직도 웨이트트레이닝과 스트레칭을 하루도 빼놓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력과 유연성 유지를 위해서다. 랑거는 “여전히 비거리는 20~30대 투어 선수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4월 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에 출전해 3라운드까지 공동 3위를 달리며 조던 스피스와 우승을 다퉜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조지아주의 오거스타GC는 전장 7435야드에 달해 50대 이상 골퍼들은 파4에서도 2온이 힘든 곳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