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소속 김동민 영상분석관(왼쪽)과 김경화 음성분석관이 대검 분석실 장비 앞에서 음성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소속 김동민 영상분석관(왼쪽)과 김경화 음성분석관이 대검 분석실 장비 앞에서 음성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대검찰청 과학수사부(부장 김영대 검사장)는 국내 과학수사 ‘사령탑’이다. 연간 100만건에 달하는 전체 범죄 중 과학수사를 필요로 하는 범죄가 10%를 넘어서면서 2015년 2월 공식 출범했다. 경찰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함께 첨단 과학수사의 ‘쌍두마차’인 셈이다.

김영대 부장은 “최근 화이트칼라 범죄가 늘면서 디지털 포렌식 등 첨단 수사기법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지만 전통적인 과학수사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과학수사 방식의 원조는 영상과 소리(음성) 분석”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이 첫손가락에 꼽은 국내 최고의 영상·음석분석 전문가인 김동민 영상분석관(45)과 김경화 음성분석관(44)을 지난 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만났다.

“영화, 드라마 덕에 떴지만…”

과학수사 분석관이라고 하면 일반인은 으레 미국드라마 ‘CSI’를 떠올린다. 예전에는 과학수사 분석관이란 직업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지만 CSI 드라마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과학수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아졌다. 김경화 분석관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전에는 분석관이란 직업을 이해시키려면 긴 설명이 필요했다”며 “하지만 과학수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지금은 주변에서 먼저 ‘전문가’ 대우를 해준다”고 말했다.

과학수사 분석관은 99% 경력직으로 채용된다. 보통 대학(원) 졸업 후 관련 연구실 등에 있다가 경력을 인정받아 채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가로 불리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이유다.

분석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김동민 분석관은 “‘CSI 이펙트(effect·효과)’라는 말이 있다”며 “가끔 의뢰인들이 CSI를 보면 분석 결과가 5초 만에 나오던데 왜 결과가 늦게 나오냐며 따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의뢰인들에게 “최소 며칠, 길게는 몇 주일 걸린다”고 하면 CSI 드라마를 거론하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 때문에 과학수사 홍보는 되지만 이런 식의 부작용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FBI 분석관을 만나 물어봤더니 그들도 드라마로 오해받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김경화 분석관은 서울대에서 언어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평소 범죄 수사에 관심이 많았던 터에 대학원에서 ‘음성학’ 과목을 수강한 것이 인생을 바꿔놨다. 당시 담당교수는 1970~1980년대 음성분석과 관련해 경찰 자문에 많이 응하던 이현복 교수였다. 그는 “당시 이 교수님을 통해 음성분석관이란 직업에 관심을 두게 됐고 이후에도 많은 조언을 얻었다”고 말했다.

전공이 컴퓨터 관련 분야인 김동민 분석관은 사진촬영이 취미였다. 어느 날 TV에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 위조지폐 사건 당시 수사에 참여한 감식전문가가 출연한 것을 보고 관련 직업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그 즈음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과학수사에 관심을 갖고 관련 경력을 쌓았고 영상공학을 전공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됐다”고 소개했다.

“뛰는 놈 잡는 나는 놈이 되기 위해”

분석관은 검사실이나 재판부에서 감정 의뢰가 오면 영상·음성 자료를 분석해 감정서를 작성한다. 감정서의 핵심은 ‘중립성’이다. 김경화 분석관은 “중립성 유지를 위해 사건기록을 보지 않고 자료만 분석한다”고 말했다. 감정서에 따라 수사결과나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객관적이려고 노력한다는 설명이다.

김동민 분석관은 “분석 의뢰를 받다 보면 깜짝 놀랄 만큼 범죄가 지능화돼가고 있다”며 “지능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신기술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기적으로 해외 학회 등에도 참석해 과학수사에 대한 의견을 공유할 기회를 많이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미국 등 과학수사 선진국과 한국의 과학수사 수준 차이는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김경화 분석관은 “해외 전문가들과 얘기해보니 한국의 과학수사 수준이 결코 국제적인 수준에 뒤처지지 않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수사기법도 비슷하고 분석관의 능력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김동민 분석관은 ‘인적 인프라’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을 조사해보면 과학수사 인적 인프라가 한국보다 잘 갖춰져 있다”며 “인적 자원이 많으면 분석의 세분화는 물론이고 다양한 분석기법 연구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학수사는 대중의 인식, 물적 인프라, 인적 인프라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며 “이런 측면에서 국내 과학수사가 더 발전하려면 인적 자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화 분석관도 거들었다. 그는 “갈수록 지능화되는 범죄에 대응하려면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 전문지식도 쌓아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며 “전국에서 의뢰되는 사건 분석만 해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라며 부족한 분석인력에 대한 아쉬운 점을 전했다. “그래도 분석관들은 틈틈이 연구를 병행하며 국내외 학회에서 논문 발표도 많이 합니다. ‘뛰는 놈’(범죄자) 위의 ‘나는 놈’이 되기 위해선 결국 많이 보고 듣고 배우는 수밖에 없잖아요.”

과학수사 기본은 결국 ‘사람’

분석관은 꼼꼼해야 한다. 반복해서 보고, 듣고, 한 가지를 계속해서 해야 되기 때문에 인내심과 꼼꼼함, 세심함 등은 분석관의 필수 덕목이다. 김경화 분석관은 “신속하고 정확하면 좋겠지만 분석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정확함”이라고 말했다.

분석관이라는 직업의 미래 전망은 어떨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AI) 등이 미래 과학수사의 지형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김동민 분석관은 “데이터 가공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진일보할 것”이라면서도 “가공된 데이터를 분석해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김경화 분석관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아무리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도 실질적인 정밀 분석은 사람의 영역일 것”이라며 “분석작업에 가장 중요한 단계인 ‘해석’은 사람 몫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경화 분석관, '이석기 사건' 3개월에 걸쳐 녹음파일 분석

[人사이드 人터뷰] "몇 분 만에 뚝딱 분석보고서?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얘기죠"
김경화 분석관의 ‘대표작’은 2014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이다.

그는 내란음모 사건 녹음파일 분석에 꼬박 3개월을 매달렸다. 그는 “2013년 5월 이른바 RO(지하혁명조직) 회합 녹음파일이 판결의 결정적인 증거였다”며 “변호인단이 녹음파일과 감정서를 인정하지 않아 법정에 세 차례나 출석해서 증언했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증언한 다음날 재판부에서 마침내 증거로 채택했다는 기사를 보고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기억과 함께 여러 감정이 스쳐갔다”고도 했다.

녹음파일 조작 가능성 여부를 판단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과학수사 선진국에서 활용하는 첨단 감정기법 등을 외국 전문가들에게 일일이 자문하며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그는 “고생도 고생이었지만 법원 결정으로 일한 결과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며 “밤낮없이 분석에 매달린 터라 시원섭섭하기도 했지만, 이제껏 맡은 사건들 중 손에 꼽을 만큼 잊지 못할 사건의 하나”라고 소회를 밝혔다.

김동민 분석관, '불법도박 사건' 셀카 사진서 계좌번호 판독

[人사이드 人터뷰] "몇 분 만에 뚝딱 분석보고서?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얘기죠"
김동민 분석관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지난해 ‘3300억원대 불법도박 사이트’ 일당 검거를 꼽았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는 단서가 확보되지 않아 사건 해결이 난망하던 상황에서 수사팀이 발견한 사진 파일 하나가 결정적 증거가 됐다. 셀카 사진이었다. 사진 뒤에 흐릿한 글씨가 있는데 알아보기 어렵다며 판독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수차례에 걸친 이미지 분석 작업 끝에 숫자와 사람 이름을 밝혀냈다. 숫자는 계좌번호였다. 이를 계기로 일당은 체포됐고, 그는 사건 해결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는 “큰 보람과 짜릿함을 동시에 느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두 분석관은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분석에도 참여했다. 김동민 분석관은 세월호 침몰 직전 경사도 분석을 통해 검·경합동수사본부가 “당시 전원 구조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김경화 분석관도 사고 당시 해양경찰의 교신파일 음성분석을 담당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