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올해는 국내외로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 많은 혼란이 예상된다. 탄핵정국의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 형국이다. 잠재성장률은 3%대에서 2%대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청년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3만달러 벽을 넘기 어려울 것 같다. 최근 호조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은 기존 리쇼어링 정책을 더욱 강하게 추진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등장으로 수입관세 인상 등 무역 상대국에 타격을 주는 정책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 일본의 보호무역주의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처럼 국내 경제의 저성장 기류는 갈수록 뚜렷해지고 국제 경제는 자국이기주의 열풍이 거센 가운데 소위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새로운 경제질서를 예고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 기술 패러다임이 융합되면서 나타날 변화여서 예측이 어렵기는 하지만 결국 모든 산업을 완전히 뒤바꿀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산업구조의 고도화’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서비스와 재화에 대해 기존 수요는 훨씬 잘 맞춰주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며 생산효율 극대화를 통해 낮은 비용으로 이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 3D 프린팅 같은 신기술과 패러다임이 다양한 방식으로 융합하고 기존 산업에 적용되면서 산업 고도화를 이뤄갈 것이다.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나 GE의 ‘브릴리언트 팩토리’는 4차산업의 핵심 기술 즉 IoT, 빅데이터, 3D 프린팅, 신소재와 같은 기술을 융합해 소비자욕구 충족 수준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들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 개개인의 요구사항을 제품 설계에 반영하고, 재고를 최소화하며, 생산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고, 배송을 효율화하는 동시다발적인 제조업의 역량 강화가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습득되는 데이터는 이 기업들이 소비자에 대해 더 잘 알게 해줘서 제품 및 관련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게 해준다. 결국 궁극적인 다품종 소량생산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태계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보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훨씬 빈번하게 탄생하게 될 것이고, 이 생태계들은 생존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격한 경쟁에 직면할 것이다. 이미 대부분 글로벌 기업은 신기술에 대한 자사 중심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기술의 이해는 기본이고 이를 산업에 효율적으로 적용, 수요와 공급의 혁신을 끌어낼 수 있는 경제적 비전을 만들어내 많은 추종자가 따라오게 하는 리더십이 절실한 시기다.

산업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3차 산업혁명부터 일부 산업들, 일례로 정보통신, 미디어 등의 산업과 일부 제조업의 경우 전통적인 수직적 통합 기업구조에서 수평적 분화 형태로 산업구조가 바뀌었는데 이 추세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심에는 ‘플랫폼 경영’이 있다. IoT와 자동화기술을 활용할 제조업은 가치사슬의 많은 부분, 예를 들면 금형 사출이나 조립, 3D 프린팅을 활용한 다품종 소량생산 등의 기능에서 다양한 시장에 적용될 수 있는 제조 플랫폼 기업들이 출현할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 즉 전자기기, 가전용품, 자동차 부품, 의료기기 부품 등 다양한 제조업에 공통으로 효율적으로 제조할 수 있는 기업들이 등장할 것이다. 과거에 수직적 통합의 효율성에 의존하던 기업, 특히 한국 대기업들은 이런 상황에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비자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기획력을 갖춘 기업들이 각 시장의 리더가 되고, 정말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 극도의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전문기업들은 제조업 가치사슬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면서 부가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분화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즉, 시장분석 및 제품 기획능력을 확실히 갖추든지, 특정 분야의 플랫폼화를 가장 잘 하든지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게 해야 살아남는 구조로 가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많은 기술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 SAP, GE, IBM, 아마존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은 빅데이터, AI, IoT 등을 활용한 산업 플랫폼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과거에 기술, 인프라, 자본의 부족으로 신산업에 진출하지 못하던 소규모 기업이나 신흥국 기업도 이런 플랫폼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산업 앱(응용프로그램)을 만들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통해 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새로운 가치창출의 기회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과 같은 나라는 이미 다양한 산업 플랫폼 조성을 통한 제조업 중흥에서 선두로 나아가고 있다. 신흥국 중에서 기술력과 우수 인력이 많은 중국, 인도와 같은 나라는 새로운 기회로 여길 소지가 충분하다.

또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 중 하나는 ‘현장주의 경영’이 필요 없어진다는 것이다.

센서와 네트워크 기술을 통해 현장에 대한 완벽한 모니터링과 통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산 및 경영활동을 모듈화해서 아웃소싱하는 것이 더욱 용이해진다는 이야기다. 물론 준비된 신흥국에 한해서만 이런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첫째, 과거 변화 사례들을 명확히 짚는 것이 필요하다. 일례로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이 왔을 때 신규 제품과 서비스 시장이 무수히 창출됐고 여기서 플랫폼 생태계 경영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또 소프트웨어 역량과 혁신의 필요성도 강조됐다. 둘째,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일관된 혁신노력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복잡할수록 목표를 단순히 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각종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고객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잘 달성하는 기업이 선도자가 된다. 어떻게 하면 고객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빠른 속도로 해 나가야 한다.

셋째,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문화를 하나로 엮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하는, 즉 근거에 기반한 경영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의 공통점은 데이터다. 크게 보면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가 제품에 접목돼 가치를 높이는 것과 데이터가 기업 업무에 접목돼 생산성을 높이는 것,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기업 업무는 단순히 생산과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 조직, 전략, 마케팅, 생산관리, 재무, 회계와 같은 경영의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를 근거로 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IoT와 AI는 예전에는 구할 수 없던 데이터를 저비용으로 확보해 이를 매우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해 낼 수 있다. 작은 업무 영역부터 시작해 모든 경영의 의사결정을 이런 데이터에 근거한 방향으로 바꾸면서 경영성과 향상을 측정하는 기업문화로 일관되게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빅데이터·IoT 장착한 GE의 새로운 '제조 패러다임'

4차 산업혁명 선도 기업의 요건…"구글·GE처럼 플랫폼을 지배하라"
제너럴일렉트릭(GE)은 산업인터넷 플랫폼인 ‘프리딕스’를 개발하고 ‘디지털 트윈’이란 새로운 제조 패러다임을 선보였다.

GE는 궁극적으로는 제조기업에서 ‘제조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수직적 결합 기업 간 제조 경쟁에서 벗어나 제조업에 필요한 플랫폼을 선점하고 이를 되도록 많은 제조산업에 적용해 B2B(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 경쟁사들을 포함, 모든 기업이 자사 플랫폼을 이용하도록 개방할 것이다.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면 그 자체로도 수익성이 올라가겠지만 추가로 발생하는 온갖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 비즈니스들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미 인공지능(AI),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로 체질을 완전히 개선한 IBM처럼 GE도 탈제조업을 시도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무수히 많은 신기술과 패러다임을 어떻게 융합할지를 견인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고객가치의 향상’이다. 프리딕스, 디지털 트윈 등 GE의 미래 전략 방향은 결국 고객가치를 증대해 시장 선도력을 키워 성장한다는 것이다. 제일 유명한 사례로 항공기 엔진에 센서를 달아 운항정보를 수집, 분석해 항공사의 연료를 절감하고 최적의 유지·보수 서비스를 가능토록 한 것은 결과적으로 GE의 시장 선도력을 공고하게 해준다.

오정석 < 서울대 경영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