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12일 조사를 받으러 특검 사무실로 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12일 조사를 받으러 특검 사무실로 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12일 오전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곧장 19층 영상녹화실로 직행했다. 특검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이 부회장이 (박영수) 특검을 만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중량급 인물이 소환되면 특검과 차 한잔 하는 통상의 절차도 생략됐다. 이 부회장은 이날 도시락과 짜장면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 관계자는 “점심은 6000원 정도의 도시락을, 저녁은 짜장면을 먹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이날 SK, 롯데 등 다른 그룹 수사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서는 다음주 소환을 예고했다. 특검의 전방위 강공수사에 대한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재계는 “정부의 문화융성 시책에 따랐던 대기업 총수를 뇌물죄로 처벌하겠다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 지원에 관여했는지 추궁

이 특검보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게 “조사 이후 판단할 것”이라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특검팀 내부에서는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수뇌부의 사법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특검팀 출범 때부터 ‘타깃’이었으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한 징검다리기도 하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최순실 씨에 대한 삼성 측 지원 사실을 사전에 알았거나 지시했는지 밤 늦게까지 집중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삿돈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횡령·배임 혐의가 있는지도 조사했다. 삼성은 2015년 7월25일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독대 이후 최씨 소유의 독일 코레스포츠와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는 등 최씨 일가를 지원했다. 이 부회장의 지시 또는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 조사 이후 삼성 수뇌부를 일괄적으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다만 그룹 경영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구속영장 청구 등 사법처리 시기는 이르면 13일로 예상되지만 단정하긴 이르다. 특검팀이 아직 뇌물공여죄의 상대방인 박 대통령은 물론 최씨도 조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특검의 소환 통보에도 불구하고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특검팀이 최씨를 조사한 이후 삼성 수뇌부에 대한 사법처리에 나선다면 구속영장 청구는 다음주 후반께나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영장이 기각됐다는 점에서 특검에 대한 법원의 견제 강도가 조금씩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다”며 “수사 초기처럼 구속영장이 쉽게 발부되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특검의 무차별적 수사 논란

특검의 이 부회장 소환에 대해 재계와 변호사업계는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냈다. “여론을 너무 의식한 과잉 수사”라는 점에서다.

한 대형 로펌의 대표는 “뚜렷한 물증도 없는데 피의자 신분으로 부른 것 자체가 오버한 것”이라며 “글로벌기업 총수를 피의자로 공개 소환해 망신을 준 뒤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더라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검에서 상징성 운운하며 이 부회장의 사법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삼성이 피해자라고 하는 주장이 틀린 말이 아니다”며 “과거 대기업 총수 사례와 비교해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이면 SK와 롯데 등 대통령이 독대한 주요 대기업은 모두 범죄집단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특검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과 승마협회 총무이사인 김문수 삼성전자 부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