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지능정보 시대의 근간 '디지털 자본'을 축적해야
이공계 출신인 내가 얼마 전 잠깐 당황한 적이 있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음속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읽고 나서다. 지구가 적도 기준으로 시속 1670㎞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고 있음에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주변 물체들 또한 같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글로벌 경제 환경은 이와 같이 설령 우리가 매일같이 느끼지 못할지라도 거대하면서도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기성세대가 경험한 지난 30년간의 경제 환경은 수요, 생산, 소득이 선순환적으로 성장한 ‘대완화(great moderation)’의 시대였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증가하면서 막대한 노동력과 수요를 창출했고 부양률을 하락시켜 소위 ‘인구배당’의 효과를 누리게 했다. 또 생산성 향상으로 생산량이 늘어나고 가격이 하락해 소비자에게 많은 경제적 잉여가치가 주어졌고 이는 신규 수요 창출로 이어졌다. 노동 투입 증대와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쌍두마차가 그간 세계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온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제 환경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빠르게 변할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가 첫째 요소인 노동 투입의 둔화다. 세계 인구 중 생산가능인구는 1964년 58%였다가 50년 후인 2014년 68%로 증가했으나 다시 50년 후에는 61%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도 작년 3763만명을 정점으로 올해부터 감소세로 접어든다. 문제는 여기에 더해 둘째 요소인 생산성 성장까지 둔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선진국의 생산성 성장이 느려지고 있으며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생산성 증대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증가가 1980년대 2.5%에서 2010년대 1.6%로 떨어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생산성을 높일 새로운 동력으로 주목받는 것이 ‘지능정보화’다. 지능정보화란 모든 사물을 연결해 정보를 디지털화하고, 첨단지능을 적용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자동화와 최적화의 가치를 이끌어내는 활동을 말한다. 요즘 회자되는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무인주행, 디지털 헬스케어, 가상·증강현실 등이 모두 지능정보화로 묶일 수 있다.

지능정보화는 벌써 수많은 가치창출의 기회와 산업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아마존 물류자동화와 같은 유통구조의 변혁, GE의 프리딕스 플랫폼과 같은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신규 사업모델 창출, 싱가포르의 민관협력기관 ARTC와 같은 디지털 컨소시엄 등장이 그 예다. 이로 인해 국가 경제나 기업 매출 차원에서 정량화되지 않는 막대한 경제적 잉여가치가 최종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이 지능정보 시대의 근간으로 활용되는 자원이 바로 ‘디지털 자본’이다. 디지털 자본은 디지털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서버, 라우터, 인터넷 소프트웨어, 온라인 플랫폼 등의 유형자산뿐 아니라 축적된 디지털 정보, BDAA(big data advanced analytics·빅데이터 및 첨단분석) 역량, 유저 경험을 더 증대시키는 디자인 등의 무형자산까지 모두 포함한다.

맥킨지는 디지털 자본이 이미 글로벌 GDP 증가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를 이끌어갈 중요한 성장동력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용하던 경제 패러다임은 이 변화를 담아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국가 단위의 경제활동을 대표하는 지표인 GDP와 기업 단위의 각종 재무지표는 디지털 자본이 창출하는 가치를 제대로 정의하고 포함하지 못한다. 디지털 자본의 존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한 것이다.

그러나 지능정보 시대에 기업이나 정부가 급변하는 기술 혁신을 이해하고 디지털 자본을 축적해 활용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기회를 포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태될 수 있다.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지구가 돌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구가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나도 움직여야 한다.

최원식 <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