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엠엔소프트가 보유한 지도구축차량 천장 뒤쪽에는 레이저 스캐너 2대가 장착됐다.
현대엠엔소프트가 보유한 지도구축차량 천장 뒤쪽에는 레이저 스캐너 2대가 장착됐다.
11일 흰색 스타렉스 한 대가 서울 원효로 현대자동차 사옥에서 상암동을 향했다. 평범한 자동차가 아니었다. 천장에는 카메라 넉 대와 레이저 스캐너 두 개, 가속도 센서가 달려 있었다. 2열 시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컴퓨터가 놓였다. 트렁크에선 대용량 저장장치가 열을 뿜어댔다.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이 모니터에 그대로 떴다.

운전자인 김정은 현대엠엔소프트 연구원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각지대에 있는 표지판 확인해요.” 최명규 연구원이 재빠르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지도에 위치를 점검했다.

이들은 현대엠엔소프트의 정밀지도 구축팀 소속이다. 일반 내비게이션에 들어가는 지도보다 열 배 이상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고 있다. 교통 표지판이나 도로상 속도 제한 숫자, 차로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자율주행차의 ‘길눈’

차량 내부에는 측정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가 실려있다.
차량 내부에는 측정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가 실려있다.
정밀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현대엠엔소프트는 대당 10억원 가까운 장비를 차에 달았다. 현대엠엔소프트에는 이런 차가 석 대 더 있다. 그 덕분에 국내에선 유일하게 정밀지도를 제작할 수 있다. 정밀지도 제작에 나선 이유는 2020년 자율주행 성능을 일부 갖춘 승용차를 내놓겠다는 현대자동차의 계획 때문이다.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정밀지도가 필수다. 각 차로 위치와 표지판 등 도로 정보를 세밀하게 입력해 놔야 효율적이고 빠른 경로로 차가 이동할 수 있어서다.

가령 직선도로를 달린다고 해도 도로 환경에 따라 차로가 좁거나 넓을 가능성이 있다. 진입로와 연결되면서 차로가 늘어나거나 반대로 차로가 줄어들기도 한다.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구간이 특히 그렇다. “지도가 정밀할수록 자율주행 실력도 베테랑이 된다”고 최 연구원은 설명했다. 지도의 정밀성은 안전과도 직결된다.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는 GPS 신호와 함께 각종 센서를 통해 위치와 교통 상황을 인지한다.

터널이나 고가도로 등에선 GPS 신호가 끊기는 일이 많아 오차 범위가 커진다. 자율주행차가 위치를 착각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정밀지도는 이때 위력을 발휘한다. 센서가 차로와 표지판 등을 인식해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한다.

◆첨단기술로 연비 높인다

세계 자동차업계는 ‘지도전쟁’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자율주행차 기술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정밀지도는 자동차 기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지도 정보가 연비와도 연관성이 있어서다.

현대차 하이브리드카 아이오닉의 연비가 좋은 이유 중 하나도 특수 전자지도 덕분이다. 첨단 운전자지원시스템(ADAS)을 지원하는 지도가 아이오닉에 적용됐다. 정밀도가 일반 내비게이션과 정밀지도의 중간 수준이다. 2011년부터 현대엠엔소프트가 70만㎞를 다니며 완성했다. 아이오닉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ADAS 지도 정보를 이용한다. 하이브리드카는 엔진을 공회전시키거나 감속할 때,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배터리를 충전한다. ADAS 지도를 바탕으로 정체구간이나 오르막, 내리막을 계산해 배터리를 충전하고 방전할 구간을 미리 나눠 최적화된 연비 운전을 돕는다.

크루즈컨트롤 기능의 안전성을 높이거나 도로가 휜 정도에 따라 전조등 방향을 조절하는 편의 기능을 구현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수한 정밀지도를 구축하는 것이 자율주행차에 도전하는 자동차 기업들의 첫 번째 도전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