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새해, 새 출발, 새로운 시대정신
최근 급격히 늘어난 평균수명으로 인해 보통 30년으로 간주하던 한 세대의 활동기간이 크게 늘어났다. 실제로 1970년의 한국인 평균수명은 62세였지만 최근에는 82세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에는 70대 이상 연령층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대학에서도 지난 세대의 교수들은 대개 회갑을 맞이하면 제자들이 마련해 주는 잔치나 기념논문집 따위로 커리어를 마감하곤 했는데, 요즈음의 대학가는 건강하고 연구에도 활발한 노교수들이 부지기수다. 현재 65세인 우리 사회의 노인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노년층, 즉 1960~1970년대에 젊음을 보낸 세대는 대한민국의 기적적 성장을 일궜으며 이들은 남다른 경륜을 쌓았다. 극한의 가난 속에서 보릿고개를 넘으며 유년시절을 보냈고 그 후 숨 막히는 독일의 탄광 속에서 혹은 열사(熱沙)의 노동현장에서 땀과 눈물을 쏟은 사람들이다.

허허벌판이었던 이 땅에 산업을 일으킨 것도 이 세대다. 세계의 전문가 모두가 무모한 일이라 평가했던 제철소를 건설하고 포항 고로(高爐)에서 첫 쇳물을 생산한 것은 1973년이었다. 실패하면 모두가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버리자는 각오를 다지며 5년여를 절치부심했던 박태준 회장과 직원들의 감격이 오죽했을까? 너무 당연하게도 그때의 ‘포항제철’ 직원들은 이제 모두 칠순을 넘겼다.

또 다른 산업도시 울산에서는 1974년에 처음으로 두 척의 유조선이 건조돼 명명식을 했다. “집을 지어 보았으니 배도 지을 수 있다”던 정주영 회장의 엄청난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으며, 도크도 없는 바닷가에서 선박을 건조한 것은 불가사의다. 그 후 현재까지 모두 1억t이 넘는 쇠붙이로 2000척 이상의 대형선박을 바다에 띄운 ‘현대중공업’을 세운 이들도 이제는 모두 노년층이다.

이들은 휴일도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일사불란한 조직의 일원으로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 대한민국을 세계무대의 주역으로 끌어올렸다. 우리의 노년층은 산업계만이 아니라 정치,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를 이끌면서 오늘의 풍요로움을 만들었다. 우리 민족사에서 영원히 기억돼야 할 영웅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지녔던 시대정신은 ‘안되면 되게 하라’에 가깝지 않았을까? 개발독재 시대였기에 비도덕적이며 불합리한 일도 마다할 수 없었으며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일도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요즈음 처한 사회경제적 어려움은 빛이 밝으면 그만큼 짙을 수밖에 없는 그림자 때문이다. 즉, 기적적 발전의 후유증이다. 부도에 직면한 기업의 모든 최고경영자(CEO)가 공통으로 느끼는 점은 “번성하던 때와 다르게 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고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조직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기적을 이룬 지난날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도전정신을 제외하곤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밝은 미래를 위한 국가혁신에서 가장 시급한 분야는 정치이고 제일 중요한 분야는 교육이라 믿는다. 제왕적 대통령은 물론이고 지역이나 보스에 기대고 있는 붕당 수준의 국회, 그러면서도 무소불위(無所不爲)인 국회를 털어버리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아울러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는 이념, 계층, 그리고 노사 등 수많은 갈등은 결국 남을 배려하지 않는 끝없는 욕심 때문이다. 이제는 한 줄로 세우는 경쟁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옛날부터 조직이 융성하고 발전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를 꼽았다. 그리고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즉 하늘의 때는 땅의 이득만 못하고, 땅의 이득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고 했다. 2017년 새해를 맞아 우리는 서로 화합하고 배려하는 행복한 사회 만들기를 다짐하자. 인화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삼자.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