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저우 시내를 지나는 민강의 모습. 민강은 푸젠성 최대 강으로 푸젠 서쪽의 젠닝현에서 발원해 동남 방향으로 흘러 대만해협으로 빠져나간다. 총 길이는 562㎞나 된다.
푸저우 시내를 지나는 민강의 모습. 민강은 푸젠성 최대 강으로 푸젠 서쪽의 젠닝현에서 발원해 동남 방향으로 흘러 대만해협으로 빠져나간다. 총 길이는 562㎞나 된다.
푸젠(福建)성은 중국 동남부 연해 지역 가운데 일찍 개혁·개방의 흐름을 타고 발전한 곳이다. 지역 내에 있던 두 곳의 지역 명칭인 福州(복주, 푸저우)와 建州(건주, 젠저우)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 福建(복건, 푸젠)이다. 그러나 상징성에서 이곳은 (민)을 내세워야 옳다.

이 글자는 지금의 푸젠 지역 자동차 번호판에 다 붙는다. 푸젠 지역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글자로 봐도 무방하다. 글자의 생김새를 들여다보면 門(문) 안에 있는 벌레 (충 또는 훼)이다. ‘문 안의 벌레’는 고전의 풀이에 따르면 ‘뱀’을 가리킨다고 했다.

뱀을 숭상하던 민월(閩越)의 터전

이 글자에 해당하는 지역의 원주민은 누구였을까. 이 점은 사실 푸젠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중국이 진(秦)나라와 한(漢)대에 접어들어 비로소 지녔던 통일의 판도가 만들어지기 전 이곳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보통 민월(閩越)로 적었다. 앞의 글자 閩(민)은 지금의 푸젠 자체를 가리켰고, 뒤의 글자 越(월)은 중국 남부의 광대한 지역에 걸쳐 살았던 비에트(Viet)를 지칭했다.

이들 중국 남부의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던 비에트는 쌀을 경작해서 먹고 살았던 도작(稻作)문명의 주역이었다. 한자로 이들을 적으면 越(월)이다. 아울러 이 비에트는 종족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중국 옛 사서(史書) 등에서는 이들을 백월(百越)로 표기했다. 여기서 100을 가리키는 百(백)의 실제 함의는 ‘셀 수 없이 아주 많은’이다.

그 많은 비에트 가운데 지금의 푸젠 지역에 삶의 터전을 일궜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바로 민월(閩越)이다. 앞의 글자 풀이에서 보듯이 이들은 ‘뱀’을 숭상하는 토템(totem)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열대의 다습한 기후가 발달한 이곳에 많이 자라는 뱀과 특별한 인연을 맺으며 살아온 사람들이었으리라는 추정이다.

푸젠은 중국 문명의 복판이라고 해도 좋을 중원(中原)의 문화와는 아무래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선사시대의 비에트가 스스로 재배한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데 비해 같은 시기 북부의 중원은 조나 수수 등을 먹었던 점이 우선 돋보이는 차이다. 아울러 의관(衣冠)을 제대로 차려입는 북부에 비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몸에 문신을 새기는 점도 차이로 꼽힌다.

이곳의 인문을 가르는 주요 경계선은 江(민강)이다. 푸젠의 대표적인 하천이다. 이를 중심으로 인문의 풍경이 달라진다. 그 남쪽 지역은 보통 南(민남)이라고 적는다. 강 이남으로부터 광둥(廣東) 동부 지역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푸젠의 가장 광범위한 南語(민남어) 권역이다. 바다 건너 대만으로 오래 전에 이주한 현재 대만의 2300만명 인구 중 민남어 권역에 속하는 사람은 80%에 이른다. 이외에 江(민강)을 중심으로 閩中(민중), 閩東(민동), 閩北(민북), 푸셴(蒲仙)의 네 방언이 또 있다. 이들 언어 사용 인구는 약 8000만명에 이르지만, 해외로 나아간 사람을 포함하면 지역언어 사용 인구는 1억2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 화교의 본향(本鄕)

중국의 역사는 전란과 재난을 피해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이동을 빼놓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푸젠도 그런 사람들의 끊임없는 이동과 관련이 있다. ‘민월’이 터전을 닦았던 이곳에 북부로부터 전쟁과 재난을 피해 찾아드는 사람들의 발길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AD220~589년) 이후 줄곧 이어졌다.

푸젠은 또한 중국 일반 지역의 문화 근저와는 다르게 해양(海洋) 문명이 발달한 곳으로 본다. 한(漢)대에 이르러 완연한 중국의 판도에 들지만 원래의 문화 바탕은 대륙보다 해양을 바라보는 쪽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이곳의 취안저우(泉州) 등을 통해 해양을 통한 국제교역이 부산했던 지역이다.

몰려드는 사람의 발길은 사람 사이의 치열한 경합과 다툼을 부른다. 그로써 푸젠에 한때 머물렀던 사람들은 다시 바다를 향해 발길을 옮기는 일이 많았다. 따라서 푸젠은 남단의 광둥과 함께 동남아 일대 수많은 화교(華僑)의 또 다른 본향이다.

대만과의 강한 연계, 동남아 화교와의 끈끈한 커넥션으로 푸젠은 중국의 개혁·개방 첨병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