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김대우 씨는 “항상 재미있는 걸 찾아다니는 성격이 이번 당선의 밑거름”이라며 “의미와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김대우 씨는 “항상 재미있는 걸 찾아다니는 성격이 이번 당선의 밑거름”이라며 “의미와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시중에 나온 것 중에는 제 취향에 맞는 영화가 없더라고요. 매번 영화를 보면서 왜 저기서는 저렇게 했을까, 이렇게 했으면 더 재미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다보니 아예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써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어요.”

‘2017 한경 신춘문예’에서 작품 ‘엠마’로 당선된 김대우 씨(35)는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요리해서 먹듯,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금은 스마트폰, 컴퓨터가 흔하지만 20~30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재미있는 게 TV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영상 매체에 대한 애정이 컸다”며 “항상 재미있는 걸 찾아다니고 지루한 건 못 참는 성격인데 그런 기질이 이번 당선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나리오는 소설과 달리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엄연히 미완성품”이라며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에 대한 기대가 작품을 써온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사회의 관습과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다. 2001년 대학을 중퇴한 뒤 주로 여행을 다니며 약 10년을 살았다. 여행 경비는 그때그때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해 마련했다. 4~5년 전부터는 전업작가 지망생으로서 글을 썼다. 남들은 ‘자리를 못 잡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부모님은 그를 믿고 밀어줬다.

김씨는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한번 빠지면 아무도 못 말리는 ‘몰입형 인간’이다.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한 뒤 단 한 차례의 전문교육도 없이 모든 걸 독학했다. 먼저 영화를 보고 나중에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읽으며 ‘이런 장면은 이렇게 표현하는 거구나’라고 배워갔다. 혼자서 이렇게 수백 편의 시나리오를 공부해 신춘문예 당선의 결실을 봤다.

힘든 일도 많았다. 김씨는 “토익 같은 시험은 점수가 있는데 글쓰기는 그게 없다”며 “내 작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없어서 지금껏 안갯속을 걷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그를 버티게 한 것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내 작품의 수준이 낮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쓴 작품이 더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이렇게 가다 보면 성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발전상을 계속 점검했어요.”

김씨는 “자기 관리를 위해 평소 규칙적으로 글 쓰는 생활을 했다”며 “특별히 쓸 게 없어도 하루에 3~4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당선작은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의 대일투쟁에 휘말려 희생당하는 한 평범한 사람에 대한 얘기다. 대의명분은 독립군에게 있지만 그 선한 대의명분이 항상 좋은 결과만 낳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진지한 의미만 담은 건 아니고 재미도 중요하게 고려했다. 총격전, 첩보전 등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담은 장면도 많이 나온다.

“작품에 진지한 의미를 담지 않는 건 작가로서 무책임한 일이에요. 그렇다고 너무 진지해져서 쓴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으면 그것도 실격이죠. 의미와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를 능숙하게 소화하면서도 세부적인 연출이 살아있는 박찬욱 감독이 저의 롤모델이죠.”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시나리오 당선작 '엠마' 줄거리

[2017 한경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김대우 씨 "시나리오 수백편 보며 독학…점점 나아진다는 확신으로 버텼죠"
1937년 만주 하얼빈시. 의열단의 ‘연지’는 총무청 차장을 암살하기 위해 옷가게 종업원 ‘혜주’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결국 암살에는 성공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연지를 도와준 혜주는 의열단의 공범이 돼 ‘방역급수부’라는 의문스런 곳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5년 후인 1942년 경성. 형무소로 호송되는 독립군을 구해주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비밀사교클럽의 인기가수 ‘엠마’다. 독립운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녀가 어째서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일까? 왜 독립군을 도와주는 것일까? 엠마는 구해준 독립군들에게 한 가지를 묻는다. 의열단원 연지의 행방이다. 연지의 행방을 묻는 엠마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편 공연하는 엠마를 보고 한눈에 반한 기자 ‘준길’은 그녀의 뒤를 쫓으며 엠마의 숨겨진 과거와 비밀, 그리고 감당 못할 거대한 비극에 대해 알게 된다.

5년 전 방역급수부로 끌려갔던 혜주가 바로 엠마다. 가까스로 그곳을 탈출한 혜주는 그 과정에서 OSS(전략사무국) 국장과 조우했고 그의 도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총독부 고위층과 인맥을 맺고 기밀 정보를 빼내는 것이 경성에 투입된 OSS 비밀요원 엠마(혜주)의 임무다. 사실 그녀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 방역급수부의 후유증이 그녀의 몸을 파괴하고 있었다.

경성에 도착한 연지는 아지트로 향하고 그 정보를 들은 엠마 역시 연지를 쫓아 아지트로 잠입한다. 드디어 5년 만에 재회하는 두 사람. 하지만 독립군 아지트에는 또 다른 불청객이 있었으니 ‘미와’ 경부다. 그는 5년 전 만주에서 혜주를 고문했고 현재는 총독부 산하 특무반 책임자로 엠마와 독립군을 쫓고 있다. 밀려드는 무술경관들로 인해 도망가는 아지트의 독립군들. 하지만 엠마는 마지막까지 남아 그들을 상대하는데….

미와 경부에게 연지는 죽임을 당하고 엠마는 상처를 입고 도주한다. 죽기 전 연지는 엠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는데, 엠마는 그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미와가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과연 연지의 마지막 부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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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통보를 받고
"포기 유혹 물리쳐준 신춘문예의 응답"

휴대폰이 울릴 때 저는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답답한 뉴스를 보며 한숨을 내쉴 때쯤 믿지 못할 소식을 전해 받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고민했습니다. 정말일까? 혹시 꿈은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의 우스운 장난?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니까 쓰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지금 생각하면 몹시도 무모했고 대단히 오만했습니다.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시간만 어찌할 도리 없이 그렇게 흘렀고, 조금씩 ‘포기’라는 단어가 뇌리에서 내려와 입언저리에 맴돌았습니다.

재능이 있는 건지 아니면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는 건지, 내가 노력은 충분히 하는 것일까, 혹시 매우 심한 정도로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할 수 있을 거라는 단단한 의지는 시간이 갈수록 흐려졌고 점점 나약해졌습니다. 그때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선됐다고. 제가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라고.

이번 당선은 저에게 있어 작은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능력은 점수로 수치화할 수 없기에 늘 불안했고 조마조마했습니다. 이 무모한 길을 계속 가도 되느냐는 저의 질문에 신춘문예가 응답해줬습니다. 조금 더 해도 된다고, 조금 더 나아가도 된다고, 아직은 포기하지 말라고.

저를 아는, 그리고 제가 아는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또한 한국경제신문과 심사위원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김대우 씨는 △1982년 서울 출색 △인하공업전문대학 조선과 중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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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강유정(영화평론가) 김성환(어바웃필름 대표)

여성이 주인공인 액션물
영상처럼 그려낸 필력 탁월


왼쪽부터 김성환·강유정 심사위원.
왼쪽부터 김성환·강유정 심사위원.
심사를 맡으면 항상, 이번엔 어떤 좋은 시나리오를 만날까 하는 설렘을 갖게 된다. 이 설렘은 때로는 실망감으로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좀 더 구체적인 기대로 바뀌기도 하는데 이번 심사에서는 많은 기대를 갖게 됐다.

당선작으로 뽑힌 ‘엠마’는 흔치 않은, 여성이 주인공인 액션물로 캐릭터의 매력과 작가의 개성 있는 리듬감이 돋보였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지도록 하는 작가의 필력은 향후 작품 활동을 기대하게 했다.

최종까지 심사위원들을 고민하게 만든 ‘경의선’은 정통 액션물을 잘 다듬어진 대사와 묵직한 필력으로 완성해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한 작품이었다. 극 중 구성의 밸런스만 조금 더 조정한다면 아주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다. 결핍이 많은 남녀의 사랑을 다룬 ‘달콤한 미르’도 타인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이 밖에 ‘구언’ ‘모범수’ ‘주짓떼라 모하니’ 등 작가들의 필력과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아 심사위원들에게 즐거운 고통을 안겨줬다.

신춘문예가 ‘몰라서 용감한’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고, 그 용감함이 걸작을 나아주리라는 믿음도 여전하다. 이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모든 작가의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