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취준생에 손 뻗치는 '범죄의 유혹'…시험성적 조작하고 다단계 빠지기도
사상 최악의 취업난으로 사회 전반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는 건 취업준비생(취준생)만이 아니다. 그 가족과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 여파는 올 한 해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서 다양하게 엿볼 수 있었다.

지난 4월 한 공시생(公試生)의 정부서울청사 침입 사건이 대표적이다. 7급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 정부청사에 침입해 인사혁신처 내 컴퓨터에 접속, 성적을 조작한 사건이다. 대학생 송모씨(26)는 정부청사 1층 체력단력장에 진입해 탈의실에서 공무원 신분증을 훔쳐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1년 더 공무원 수험생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소한 사건도 많다. 신촌지구대 경찰관들은 지난 9월 폭력 신고를 받고 한 술집에 출동했다가 당황했다. 술에 취한 20대 남성들이 다툼을 벌이다가 경찰관을 보더니 다짜고짜 “경찰 시험 왜 이렇게 어렵냐”고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운 것. 경찰 공무원 수험생들이었다. 신촌지구대 경찰관은 “취업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으면 저럴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취업 기간이 길어지면 취준생 불안은 가파르게 커진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취업하기 어려워져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졸업 후 3년이 지난 지원자는 졸업 평점이 4.0점 이상으로 높다고 하더라도 서류전형 통과 가능성은 7.8%에 불과했다.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10월10일 새벽 2시께 서울 진관동의 한 오피스텔 화장실에서 목을 매고 숨진 채 발견된 김모씨(28)도 구직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관은 “취업이 안 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다”며 “잊을만하면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취업이 어렵자 범죄에 가담하는 취준생도 늘고 있다. 지난 10월 2000억원대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운영에 가담한 혐의로 검거된 120여명은 모두 구인 광고를 보고 지원한 취준생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사무직인 줄 알고 입사 지원했다가 면접에서 불법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월급을 200만원부터 시작해 3개월마다 20만~30만원씩 올려준다는 조건을 외면하지 못했다.

사기 같은 무거운 범죄가 아니더라도 경범죄에 연루되는 일도 잦다. 서울시립대의 한 재학생은 “고시원이나 학교에서 휴대폰이나 지갑, 교재, 화장실 휴지까지 도난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며 “물건 주인과 훔친 사람이 같은 취준생인 경우가 많다”고 씁쓸해했다.

취준생을 표적으로 하는 범죄 집단도 많다. 한동안 뜸했던 대학생 불법 다단계 피해도 다시 급증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8월 처음으로 대학생을 특정하고 불법 다단계 피해 주의경보를 발령했다. 대부분 불법 다단계는 취업이나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판매원을 모집한다. 친구 소개로 채용 면접을 보러 갔다가 다단계 교육은 물론 제2금융권에서 대출까지 받고, 건강보조식품이나 화장품을 강매당하는 식의 피해가 많다. 반품을 요청해도 위협적인 행동으로 거부당하기 십상이다.

박상용/임락근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