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자기 위치 지키기'의 위대함

희망의 목장

김형숙 < 서울 금천구립 금나래도서관장 >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방사능 누출로 출입금지구역이 된 곳에는 목장 하나가 있고, 피폭된 수백 마리의 소에 살처분 명령이 내려진다. 어차피 먹지 못할 소니까 모두 죽이라는 것이다. 소치기는 명령을 거부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금지구역에 남아 남겨진 소들을 돌보기로 결심한다. 그는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소를 돌본다. 하지만 영양가 있는 걸 먹이지 못해 소들은 자꾸 죽어 나간다. 그래도 소치기는 “내일도 모레도 밥을 주겠다”고 말한다.

《희망의 목장》은 쓸모가 사라진 자리에서 생명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이다. ‘살아 숨 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의미가 있고 없고는 어떻게 구분할까.’ 어린이에게는 다소 어려운 주제일 수 있지만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가장 근원적이고 단순한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글을 쓴 작가 모리 에토는 1991년 청소년소설 《리듬》으로 고단샤 아동 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국내에 번역·출간된 《우주의 고아》로 노마 아동 문예 신인상과 산케이 아동 출판 문화상 등을 받은 유명 아동문학가다.

작가는 소치기의 덤덤한 목소리를 과장 없이 담아낸다. 그동안 목장의 소는 인간의 맛있는 음식이 되기 위해 살고 죽었다. 인간이 정한 소의 운명이다. 이제 소들은 먹거리의 쓸모가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소들은 물 먹고, 밥 먹고, 똥 누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소치기는 스스로 묻는다. “팔지 못한 소를 계속 돌보는 일은 의미가 없을까. 어리석은 일일까.” 그러고는 소들을 향해 얘기한다. “얘들아, 많이 먹고 똥 누거라. 그래도 돼, 그게 너희 일이니까. 내일도 모레도 밥 줄게, 나는 소치기니까.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여기 있을 거란다.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없어.”

화가 요시다 히사노리는 인적 끊긴 마을의 풍경과 소치기의 반복되는 고된 일상, 그의 복잡하고 단단한 내면을 토속적인 화풍으로 표현한다. 무시무시한 재난의 현장에서 살아남으려는 강인한 생명력을 피부로 와 닿게 한다. 소들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이 목장을 ‘희망의 목장’이라 부른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위치 지키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주인공 소치기를 통해 사람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누려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은 행복하려고 사는 것인데 그 행복은 자기 위치를 지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소치기가 소를 지키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듯이 우리도 현재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을 잘 해내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한다. (모리 에토 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고향옥 옮김, 해와나무, 32쪽, 1만1000원)

김형숙 < 서울 금천구립 금나래도서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