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의 이슈프리즘] 이광구의 신상훈 활용법
금융계 고위직엔 우리은행 출신이 유독 많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우리은행장을 지냈다. 김희태 신용정보협회장과 황록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도 우리은행 부행장을 거쳐 계열사 사장을 역임했다. 우리은행으로 간판을 바꾼 뒤 행장을 지낸 다섯 명(이덕훈, 황영기, 박해춘, 이종휘, 이순우) 중 세 명이 아직도 현직이다. 생명력이 그만큼 뛰어나다.

비결은 역시 주인이 정부였다는 점이다. 정부가 인사권(때론 터무니없는)을 휘두르면서 이들도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다. 다름 아닌 정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임원이 되려면 정권의 실력자에게 줄을 대기 위해 뛰어야 했다. 성공하는 사람만 부행장이 됐고, 행장이 됐다. 이덕훈·황영기·박해춘 전 행장은 아예 외부에서 왔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일찍부터 연과 줄을 찾는 데 익숙해져 있다 보니 퇴임 후에도 다른 자리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상이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출신과 비교되는 것이 신한은행 출신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전 신한금융투자 사장)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신한은행에서 근무한 적은 있으나 잔뼈는 하나은행에서 굵었다. 최영휘 KB금융 이사회 의장(전 신한금융 사장)의 존재감은 묵직하지만 비상근이다.

신한은행은 전통적으로 외부의 바람을 덜 탔다. 내부에서 죽도록 일하는 사람이 중용됐다. ‘신한 사태’도 결국 내부의 문제였다. 걸출한 인물이 여럿 나왔지만 퇴임 후에는 비교적 조용히 지낸다. 최영휘 전 사장처럼 자기 경험을 전수하는 역할에 만족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난 대선 때 금융인의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이끌었던 이동걸 회장이 오히려 예외일 정도다. 외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우리은행 출신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상반된 문화를 갖고 있는 두 은행이 드디어 접점을 찾는 실험을 한다.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이 30일 우리은행 임시 주주총회에서 과점주주 몫의 사외이사로 선임될 예정이어서다. 신 전 사장은 신한·조흥 통합은행장을 지내면서 신한은행 중흥기를 이끌었던 사람이다. 비록 신한 사태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으나 그만큼 신한은행의 1등 DNA를 만들고 체화한 사람도 없다. 사외이사라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그의 존재는 우리은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신한은행 DNA 활용여부 주목

키는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쥐고 있다. 이 행장도 전임자처럼 선임 당시엔 이런저런 구설에 올랐다. ‘서금회(박근혜 대통령이 졸업한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지원설’이 그럴듯하게 돌기도 했다. 하지만 빼어난 리더십으로 이런 구설을 잠재우며 민영화를 성사시키고 눈에 띄는 경영성과를 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이 행장이 신 전 사장의 경험을 잘만 활용하면 ‘민영 우리은행’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상당하다.

변수는 이 행장의 임기가 내년 3월이라는 점이다. 연임 여부를 둘러싸고 또다시 외부의 입김에 휩싸인다면 이런 관측은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오히려 과점주주들의 반발로 혼란을 겪을 게 뻔하다. 민영 우리은행이 신한은행의 성공 경험까지 가져와 리딩뱅크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3개월에 달렸다.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