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처방 방식을 둘러싸고 의사와 약사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매년 시행하는 제도 인식조사에 올해 처음으로 ‘성분명 처방’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포함하면서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지금처럼 제품명으로 처방하지 않고 성분명으로 처방하는 방식이다. 약사는 제도 시행에 찬성하고 있지만 의사들은 반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이달 중순 내놓은 ‘2016년도 건강보험제도 국민 인식 조사’에는 제품명 처방과 성분명 처방 중 어떤 방식을 선호하느냐를 설문조사한 결과가 포함됐다. 설문에서 응답자의 53.6%가 성분명 처방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제품명 처방이 낫다고 답한 사람은 19%에 그쳤다.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 약제비 지출을 줄이는 방안 중 하나로 성분명 처방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엔 '약 선택' 주도권…또 싸우는 의사와 약사
조사 결과가 공개되면서 약사와 의사단체가 성명을 내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약사회는 “성분명 처방 제도가 시행되면 국민이 약을 편하게 살 수 있게 되고 건강보험 지출도 줄어들 것”이라며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사협회는 “의사가 약을 처방하고 약사는 처방전대로 조제한 뒤 복약지도를 충실히 해야 약 오남용을 줄일 수 있다”며 “현재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두 단체가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은 처방전 발행 방식에 따라 약을 선택하는 주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제품명 처방은 환자가 써야 할 약을 의사가 선택한다. 약을 선택할 때 약사는 개입할 수 없다. 독일 미국 등에서 시행하는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처방한 성분에 따라 약사와 환자가 제품을 선택한다. 약사 입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의료계 관계자는 “복제약이 활발히 유통되는 시장 구조상 하나의 성분에도 수많은 상품이 존재한다”며 “여러 복제약 중 무엇을 선택하는가는 제약사의 마케팅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약 선택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는 약 리베이트를 누가 받느냐와 직결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