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인사분야 기술 박람회(HR Tech World Congress)에서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인 쉘은 인사데이터 분석 전담 부서 피플애널리틱스팀이 임직원 보안사고를 줄이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선보였다.
[한경 BIZ School] 인사 데이터에 합리적 의사결정 숨어있다
[한경 BIZ School] 인사 데이터에 합리적 의사결정 숨어있다
쉘 임직원은 1주일 평균 100여명이 부주의로 피싱이나 바이러스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사 데이터와 보안사고 데이터를 결합해 통계 분석을 해보니 피싱 사고는 재직기간 5년을 기점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컴퓨터 바이러스 사고는 5년을 기점으로 빠르게 감소하는 패턴을 보였다. 임직원이 보유한 스킬이나 배치 유형(단기 해외 배치 등)도 보안사고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패턴을 확인한 피플애널리틱스팀은 인공지능의 한 분야인 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해 임직원의 보안사고를 예측하고 설명하는 분석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보안사고 고위험군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했다.

이후 쉘은 보안과 관련한 교육비용과 리스크가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재직기간, 자격증, 배치정보 등의 전통적 인사 데이터와 임직원별 보안사고 유형 및 건수 같은 비전통적인 데이터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뽑아낸 사례다.

이렇듯 기업의 성과 개선을 위한 도구로서 잠재력이 큰 피플 애널리틱스가 왜 최근에 와서야 주목받기 시작한 걸까. 마케팅이나 영업 분야에서는 10여년 전부터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구매 행위·특성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인사부서에도 데이터를 통해 직원들의 바람직한 행위·특성 패턴을 분석해 과학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다만 아래 세 가지 차원에서 나타난 최근의 변화가 인사부서의 욕망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도록 수단과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 데이터 차원의 변화

인사 데이터는 변화 속도가 느리고, 크기가 작고, 평가·자기소개서 등을 제외하고는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정형화돼 있다는 특징이 있다. 최근에는 전통적 인사 데이터에 다양한 데이터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고객관리시스템(CRM)을 통해 수집한 영업직원의 매출 데이터와 콜센터 직원의 고객만족도 점수를 분석해 높은 성과를 내는 직원들의 패턴을 찾거나, 사내 이메일 로그를 통해 직원들의 통신 패턴을 파악해 부서 간 가교(hub) 역할을 하는 직원을 발굴하고, 링크트인 같은 구직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직원들의 내역을 모니터링해 퇴사 징후를 감지하는 등의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 분석기술 차원의 변화

최근 다양한 분야에 활발하게 적용되는 기계학습(사람으로부터 지시를 받지 않거나 아주 제한된 지시만 받고 데이터를 학습·분석해 패턴을 추출하는 분석방법) 기술이 보편화된 것도 피플 애널리틱스의 도입 및 확산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양한 분석도구를 사용해 과거에 비해 쉽고 저렴하게 예측분석과 같은 고급 분석기술을 인사 데이터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데이터 분석 기술과 경험을 보유한 인력층이 점점 두터워지고 있는 것도 기업이 피플 애널리틱스팀을 꾸리기에 좋은 환경이다.

인사부서는 세일즈, 오퍼레이션 같은 부서에 비해 늦게 출발한 만큼 다른 부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축적된 우수 사례를 활용할 수 있는 ‘늦게 시작한 이점’이 있다는 점 역시 피플 애널리틱스가 선진 기업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 경영환경 차원의 변화

[한경 BIZ School] 인사 데이터에 합리적 의사결정 숨어있다
기업의 발전 과정을 보면 회계부서가 생긴 뒤 재무부서가 도입됐고, 세일즈 기능에 마케팅 기능이 추가되면서 패러다임의 혁신을 가져왔다. 변화의 중심엔 어김없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DDD: data-driven decision-making)이 있었다. 어떤 부서가 전략적이라는 것은 데이터에서 발견한 패턴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이다. 사후적으로 학력별, 학교별, 성별 신입사원 채용 숫자를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확인한 성과와 관련이 있는 신입사원 선발 기준을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인사부서가 국내에 과연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은 피플 애널리틱스를 통해 인사부서가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할 시기다. 이를 위해서는 주관과 느낌에 의존하던 의사결정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보강해야 한다. 피플 애널리틱스를 먼저 시작한 기업들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경쟁우위를 누리게 될 것이다.

기계(알고리즘)의 판단이 우수하다고 증명된 경우에도 이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알고리즘 회피 성향이라고 한다. 객관적으로 기계가 사람보다 정확히 예측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기계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기계는 실수를 통해 배우지 못하지만 사람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그릇된 믿음이다.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면 사람의 뇌 속에 구축된 예측모형은 완고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반면 기계는 새로운 현실을 반영해 예측모형을 지속적으로 개선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철학자 후설이 주창한 개념 중에 ‘판단중지’라는 것이 있다. 진실을 파악하려면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는 마음부터 깨트려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이미 ‘선험적 판단’에 발목 잡혀 있으니 진실을 보려면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판단중지’가 힘들 것 같으면 기계의 의견에 귀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양승준 < 아이디케이스퀘어드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