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정정요청도 부정청탁?…학생들 '전전긍긍'
기말고사가 한창인 대학가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혼란이 재연되고 있다. 조기 취업생에 대한 학점 부여는 ‘부정 청탁’이 아닌 것으로 정리되고 있지만 이번엔 취업준비생들의 ‘학점 세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A 이상을 받지 못한 수업에 재수강이 가능하도록 C 이하로 학점을 낮춰달라는 학생들의 부탁이 부정청탁으로, 김영란법 위반이란 해석이 나오면서다.

15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울대는 교수들에게 학생들의 ‘학점 정정 요청’ 행위도 김영란법 위반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학점 정정은 재수강을 위해 학점을 내려달라는 부탁이 대부분이다. 한 서울대 교수는 “B등급(3점대) 학점을 받을 바에야 재수강이 가능한 C~D등급(1~2점대)을 원하는 학생이 많다”며 “졸업학점 0.1점에도 민감해하는 학생들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어 대부분 받아줬는데 이번 학기부터 못 들어주게 됐다”고 말했다.

고려대 연세대 등 다른 대학도 같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들 대학 관계자는 “학점 부여에서 교수와 학생은 이해관계자”라며 “채점상의 오류 등을 바로잡아 학점이 수정되는 것은 괜찮지만 재수강을 위해 학점을 내려달라는 것은 일종의 부정청탁”이라고 했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공식 검토를 해보진 않았지만 정당한 사유 없는 학점 정정이 학칙 등 법령에 위배된다면 부정청탁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불만이다. 조기 취업생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취업계’를 내면 교수가 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학점을 받고 있어 역차별이란 얘기도 나온다. 서울대 3학년 서모씨(23)는 “지난주 기말고사 한 과목 시험을 일부러 망쳤다”며 “의도적으로 낮은 학점을 받기 위해 시험을 안 보거나 망치는 친구가 많다”고 귀띔했다. 한국외국어대 4학년 홍모씨(25)는 “앞으론 학점을 낮추고 싶으면 ‘교수님, 제 성적이 과대평가됐습니다’라고 정식 항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교수 사회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서울대 A교수는 “지금껏 당연하게 여겨져온 ‘학점 세탁’ 자체가 편법이자 부정청탁”이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B교수는 “유학이나 취업을 위해 높은 학점이 꼭 필요한 학생도 있는데 부정청탁으로까지 매도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양대의 한 교수는 “학생들이 주는 음료수 하나도 받지 말라는 공문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이었다”며 “사제 간의 정이 사라져 학교가 학원으로 전락한 느낌”이라고 했다.

황정환/구은서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