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이미자의 엘레지, 오탁번의 엘레지
‘최순실 정국’으로 세상은 어수선해도 어김없이 연말은 다가온다. 매년 이맘때면 관록 있는 가수들의 디너쇼가 열린다. 올해로 가수 생활 57년째인 이미자 씨 역시 송년 무대를 준비하는 대표적 가수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엘레지의 여왕’이 그것이다. 엘레지(elegy)는 슬픔을 노래한 악곡을 말한다. 우리 정서에도 잘 맞아 황혼의 엘레지, 해운대 엘레지 등 수많은 엘레지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비가(悲歌)다.

‘말복날 개를 잡아 동네 술추렴을 했다…술이 거나해졌을 때/아랫집 김씨가 나에게 말했다/이건 오씨가 먹어요, 엘레지요/엉겁결에 길쭉하게 생긴 고기를 받았다/엘레지라니? 농부들이 웬 비가를 다 알지?….’ 오탁번 시인의 ‘엘레지’란 시 일부다. 그런데 그의 엘레지는 우리가 아는, 가슴을 적시는 그 엘레지가 아니다. 이미자 선생께는 송구스럽지만, 순우리말 엘레지는 좀 민망한 말이다. ‘개의 ××’를 가리킨다. 한자어로는 구신(狗腎)이다. 정력 하면 떠오르는 해구신은 곧 물개의 거시기다. 오 시인은 ‘30년 동안 국어선생 월급 받아먹고도/엘레지라는 우리말을 모르고 있었다니!’라고 시에서 고백했다.

고유어 꽃 이름 중에도 엘레지, 얼네지 등으로 알려진 게 있다. 이는 ‘얼레지’가 바른말이다. 잎에 얼룩무늬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 꽃은 동트기 전엔 수줍은 듯 꽃잎을 오므리고 있다가 햇볕이 들면 순식간에 꽃잎을 뒤로 활짝 열어젖힌다. 그렇게 속살을 드러낸 모습이 마치 봄바람에 치맛자락이 말려 올라간 여인의 자태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도 ‘바람난 여인’ 또는 ‘질투’다.

이렇게 시시콜콜 따지는 걸 미주알고주알 캔다고 한다. 이 말도 유래를 알고 나면 뒤끝이 깔끔하지는 않다. 미주알은 우리 몸 가운데 아침마다 조용히 앉아 뒷심 주는 곳을 가리킨다. 항문 또는 밑살이다. 미주알은 남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고 감추려는 곳이다. 그래서 미주알고주알은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를 비유해 이른다. 고주알은 단지 운을 맞추기 위해 덧붙었다. 세월아네월아, 곤드레만드레 같은 구조로 보면 된다.

지역에 따라 이를 ‘미주리고주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바른말이 아니다. 특히 한자어 고주리(蠱痢)는 이질의 하나로, 설사에 피똥 싸는 병을 뜻한다. 그러니 단독으로 미주리니 고주리니 했다간 곤욕을 치를 수도 있어 조심할 일이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