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한국은 SW가 약하다'는 가설
“한국은 하드웨어(HW)는 강한데 소프트웨어(SW)가 약하다.” 밖에서 한국 산업에 대해 이렇게 논평하는 건 둘째치고 우리 스스로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며 이런 주장을 내놨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의 이점을 살려 ‘HW+SW 병행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KDI 제안이 전제하는 것도 똑같다.

비교우위론? 숙명론?

그런데 한 발 더 들어가면 KDI의 제안은 몇 가지 논쟁적 이슈를 낳을 수 있다. HW와 병행하자는 SW의 정체와 관련해서다. 가령 ‘한국은 구글 등 미국 선발업체의 SW를 따라잡기 어렵다’ ‘글로벌 플랫폼 선점은 미국이 유일할 거다’ ‘한국이 되지도 않을 인공지능 SW를 하느니 차라리 미국 선발업체에 맡기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자율주행차를 예로 들면 현대차+구글의 HW+SW 병행으로 가자는 식이다. 지금의 삼성+구글의 스마트폰과 다를 바 없다. 결국 HW+SW 병행도 어떤 병행이냐가 문제다.

KDI 주장은 ‘비교우위론’에 근거한다. 이코노미스트들의 전형적인 논리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해 봄 직하다. 한국 SW는 진짜 약한가. 아니면 약한지, 강한지 우리도 아직 모른다고 해야 맞나. 어쩌면 우리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있는 건 아닐까.

‘비교우위론’에 ‘태생적 불리함’까지 더해지면 한국 SW가 설 땅은 더 좁아진다. SW 언어는 영어이고, 따라서 한국은 영어권 국가의 SW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숙명론이다. 한국이 굳이 SW를 하려면 언어적 불이익이 덜한 쪽을 택하라는 주장은 이런 숙명론에서 나온다.

그러나 전혀 다른 주장도 가능하다. 한국의 응용SW 중소기업 ‘마이다스아이티’ ‘인피니트헬스케어’ 등이 다국적기업들이 포진한 시장에서 해낸 기술추격과 국제화는 연구 대상이다. ‘기회의 창’ ‘비약(leapfrogging)’ 가설의 입증 케이스로도 부족함이 없다. ‘SW DNA’가 특정 국가, 특정 기업에만 있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김명준 SW정책연구소장은 아예 ‘한국은 시스템SW를 개발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질타한다. 이런 잘못된 사고엔 ‘일본도 못한다’는 점도 들어 있을 거라고 덧붙인다. “한국이 미국 시스템SW 위에서 노는 게 좋겠다는 건 미국의 희망일 뿐 한국이 추종할 이유는 없다”는 게 김 소장의 주장이다.

이런 시각들이 무모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한국 SW는 SI(시스템통합) 프레임에 갇혀 집안에서 대기업이 어떻고 중소기업이 어떻고 싸우기만 했지 SW의 진짜 본령, 그리고 더 넓은 시장을 향해 진군의 나팔을 제대로 불어봤던가.

"고정관념부터 깨야"

돌이켜 보면 한국의 산업 발전 과정 자체가 비교우위론의 부정이었고, 태생적 불리함의 극복이었다. 국제 분업구도를 주어진 것으로 보느냐, 깨야 할 대상으로 보느냐는 엄청난 차이다. 한국 SW가 처음부터 큰 시장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작은 시장에 가둬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가 SW 중심사회를 말하지만 포인트를 확실히 해야 한다. 핵심은 SW 기업가요, 개발자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 영웅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SW 기업가와 개발자의 상상력이 이코노미스트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데 한 표를 던진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