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9000억 적자기업 살려낸 '단순함'의 힘
스티브 잡스의 가장 큰 경영 무기는 ‘단순함’이었다.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잡스는 ‘심플 스틱(simple stick)’을 휘둘렀다. 조직의 관료주의를 걷어내고, 층층이 쌓여 있는 의사결정 체계를 간소화했다. 20여종에 달하는 제품군을 개인용, 전문가용, 노트북, 데스크톱 등 4가지로 확 줄였다. 디자인도 혁신성을 담되 단순함을 추구했다.

잡스의 ‘심플 경영’은 애플이 제품을 차별화하고 새로운 범주의 제품을 만들어내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크게 벌려놓는 데 기여했다. 애플은 심플 경영의 훌륭한 본보기지만 그런 회사는 비단 애플만이 아니다. 단순함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 애플의 방식에 영감을 받은 켄 시걸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다른 회사의 사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단순화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리더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서였다.

《싱크 심플》은 세계 곳곳의 회사들에 감춰진 단순함의 법칙을 찾아 떠난 여정의 결과물이다. 저자인 시걸은 17년 넘게 잡스와 함께 일하며 애플의 광고와 마케팅을 맡았던 크리에이티브디렉터다. 아이맥(iMac)이란 제품명을 고안해 아이(i) 시리즈의 기반을 마련했고, 잡스가 복귀한 직후 전사적으로 벌인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마케팅을 기획해 애플의 부활을 도왔다.

전작 《미친듯이 심플》에서 애플의 혁신을 가능하게 한 단순화 원칙 11가지를 제시한 시걸은 이 책에서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 3년여간 직접 만난 리더 40여명의 이야기를 잡스의 사례와 유기적으로 엮어 ‘심플 경영’의 힘을 보여준다.

수천, 수만명의 직원이 일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 시스템을 단순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복잡함이 있는 곳에 단순함으로 혁신을 이룰 기회가 있다. 저자는 복잡한 금융업계에서 단순함의 전략을 멋지게 성공시킨 사례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리더십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2003년 정 부회장이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대표를 맡았을 때 두 회사의 손실액 합계는 연 8960억원에 달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 회사들은 연간 9100억원의 이익을 냈다. 저자는 정 부회장이 현대카드에 도입한 단순함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고 평가한다.

정 부회장은 고객들의 옵션을 단순화했다. 32종에 달하는 신용카드를 뚜렷한 특징이 있는 4종으로 줄였고, 자동차 구매와 연관된 캐시백 카드인 엠카드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단순함을 전사적으로 추구해야 할 문화로 삼고, 이를 기반으로 상품 디자인, 의사결정 체계, 사무공간을 변화시켰다. 고객들을 위한 대형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여는 현대카드는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내한 공연 의사를 밝혔을 때 상당한 비용을 들여야 하는 부담에도 단 두 시간 만에 추진 결정을 내렸다. 정 부회장은 “결정 하나를 내리는 데 한 달 이상 걸리는 회사들도 있지만 현대카드에선 단 하루가 걸린다”며 “이것이 우리가 지닌 가장 훌륭한 무기”라고 말했다.

저자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직관적으로 사고하라’ ‘마케팅·조직·승인절차를 간소화하라’ 등 심플 경영의 원칙들을 요약하면서 “단순함은 사실 단순하지 않다”고 재차 강조한다. 한 기업을 보다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강철 같은 투지, 가차없는 추진력, 마라톤을 하는 것 같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심플 경영을 추진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단순함은 조직의 성장을 막는 ‘복잡함’이란 걸림돌을 제거하면서 비즈니스 지형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수 있게 돕고, 직원들이 하나의 문제에 집중하게 하며, 오래 지속되는 기업의 이미지를 만든다.

”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