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성찰 없는 4차 산업혁명은 재앙의 출발일 뿐
2015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의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교통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경찰은 운전석에서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구글의 무인자동차였다. 사고를 우려해 너무 저속으로 달리다 적발된 것이었다. 네바다,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몇 개 주는 자율주행차의 도로 주행을 법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판단과 제어에 의한 자율주행차의 사고는 그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제작자가 문제인지 소유자가 문제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인공지능, 로봇,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 혁신이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논의가 활발하다. 기존 생산 시스템을 뛰어넘는 4차 산업혁명의 변곡점에 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인가》는 이런 변화에 대한 각계 전문가 28명의 통찰을 담은 책이다. 과학과 사회 시스템 사이의 상호 작용을 다루는 국책 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미래연구센터가 책을 기획했다. 저자들은 우리가 경험하게 될 과학기술이 삶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을 분석한다.

첨단 기술 발달은 인간이 그동안 시달려온 질병, 나아가 죽음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할지도 모른다. 저자들은 2050년쯤 융합기술에 의해 개조된 인간 이후의 존재 ‘포스트휴먼’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생체 장기를 인공 장기로 대체한 인간이 피와 살을 가진 생체 이외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 인간의 두뇌 활동과 기억이 컴퓨터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죽음을 초월할 수도 있다.

포스트휴먼 시대가 오면 인간은 세계를 일시적으로 이끈 존재에 불과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경제·사회적 역할을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비용의 인간을 대체할 인공지능 기술의 효율성이 최적화된 방향으로 사회는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저자들은 도태된 인간은 일자리를 잃거나 권태에 빠져 중독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이런 위험이 도래하기 전에 포스트휴먼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자연 재난에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과학기술 장치들이 오히려 문명 재난을 일으키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만물 인터넷으로 구현되는 초연결사회는 그것을 능가하는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가중된다는 것. 과거와 달리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태가 국내 경제나 주식시장에 더 빨리 영향을 미친다. 고도로 발달한 통신망에서 오류 확산으로부터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디지털 산불(digital wildfire)’이란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따라서 미래로 가는 역사의 행로는 과학기술 혁신만으로는 열리지 않는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과학기술 발전에 집착하는 혁신은 미래의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가치 있는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불확실하고 복잡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융합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한 국가가 미래에도 잘살기 위해 미래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이며, 이를 위해 현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아는 능력인 국민의 ‘미래 문해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