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오전장시스템 강기봉 사장 "노사가 힘 모으면 한국 제조업 성장 충분히 가능"
“기업인들이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얼마든지 제고될 수 있습니다.”

경북 경주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의 강기봉 사장(57·사진)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조업이 위기라지만 노사가 힘을 모은다면 성장판이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것을 발레오가 입증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지난 5일 제53회 무역의 날을 맞아 5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올해는 지난해 수출액보다 2000만달러(67%) 늘어났다.

강 사장은 “올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발레오 노조의 금속노조 자진 탈퇴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뒤부터 수출이 크게 늘었다”며 “노조가 금속노조와의 기나긴 전쟁에서 이겼기에 가능한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2010년 초 도요타의 구매 담당 임원이 발레오 공장을 찾았을 때 금속노조가 공장 밖에 ‘일용직이 만든 발레오 제품은 품질을 보증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일본어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만성 적자의 늪에 빠진 발레오는 경영 정상화를 위해 연봉 7000만원 이상 받는 경비업무를 외부업체에 맡기려다 금속노조와 발레오만도 지회의 연대파업에 직면했다. 그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이 여파로 현대자동차의 소형 엔진 전장품 납품회사에서 제외됐다. 그는 “여기서 밀리면 회사를 청산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에 기업노조와 다른 활로를 찾는 데 죽기살기로 매달렸다”고 말했다.

당시 새 노조를 세운 정홍섭 위원장은 도요타 간부들이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노조를 믿고 제품을 사달라. 노사문제 때문에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회사는 2012년 금속노조와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도 도요타와 발전기 및 시동모터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들 부품은 도요타의 부품 계열사인 덴소가 독점 공급해오던 것으로 도요타가 대당 15만원 이상인 핵심 부품을 일본 외 기업에 맡긴 것은 처음이다. 이를 시작으로 회사는 르노와 닛산, GM 등에도 부품 공급에 나서 수출액이 지난해 3000만달러에 이어 올해 5000만달러로 늘었다.

노조는 지난달 호봉제 위주인 임금체계를 직무와 성과 중심 임금체계로 전환하는 데도 회사 측과 합의했다. 현대·기아자동차, 철도·지하철 등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노조 대부분이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고수하며 강경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과 달리 발레오 노조는 회사의 미래를 위해 눈앞의 이익을 양보하고 사측과 자발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강 사장은 노조의 통 큰 양보에 ‘회사 당기순이익의 25%를 성과급으로 주겠다’는 내용을 올해 단체협약에 명문화했다.

이 회사는 프랑스 계열의 발레오그룹이 전액 투자한 자동차 부품회사로 ISG(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시동이 걸리고 멈추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는 장치) 등 신개념의 전장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2009년까지 만성 적자를 내던 회사는 연간 400억원의 흑자를 올려 직원들은 해마다 평균 1000만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고 있다. 강 사장은 “시골의 조그만 회사가 목숨을 내놓고 이뤄낸 개혁을 국내 제조업이 벤치마킹해 위기 극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