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청문회’에서 새누리당 소속인 김성태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회의 개의를 선언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청문회’에서 새누리당 소속인 김성태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회의 개의를 선언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저게 무슨 말이야.”

국회 본관 4층 복도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6일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중 “국내 대기업이 외국에 투자한 돈의 3분의 1만 한국으로 옮기면 취업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하자 국회 복도에서 TV를 지켜보던 기업 관계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경영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말”이라며 “이런 발언들이 생중계되다 보니 기업 이미지는 한없이 깎일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다른 관계자는 “청문회에 참석하는 의원들이 기본적인 공부는 하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국회의원들 공부 좀 했으면”

이 의원은 “실업률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청년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며 “반면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많이 쌓였는데 기업들은 이제 일자리 창출에 올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금이 높아서 혹은 노사관계가 좋지 않아서 채용을 못하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외국에 투자한 돈의 3분의 1만 한국으로 가져오면 취업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추가 질의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지목해 국내 투자를 늘리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기업들이 어떤 환경에서 경영하는지 전혀 모르고 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당장 ‘사내유보금=기업이 쌓아둔 현금’이라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 재무담당자는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설립 이후 매년 벌어들이는 이익에서 세금과 배당을 뺀 금액을 매년 회계적으로 기록한 것”이라며 “이익을 모아 투자한 자산도 사내유보금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사내유보금을 쌓아놓은 현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전제”라고 말했다.

해외 투자가 많다는 주장 자체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장 이 부회장은 “투자액의 약 90%가 한국 시설 투자에 들어간다”며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는 한국 투자가 거의 100%”라고 밝혔다.

국내 투자 환경을 무시한 발언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는 대부분 공장 증설인데 한국에 공장을 무작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과 신흥국의 임금 대비 생산성이 크게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한국의 규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푸념도 나온다. 신 회장은 “쇼핑센터 등을 만들고 싶어도 출점 규제 때문에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규제 완화를 하면 좋은 일자리를 좀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미국 애플은 테러리스트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해제해 달라는 정부 요청을 거부했다”며 “왜 한국 기업들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같은 부당한 정부 압력에 굴복하느냐”고 질책했다. 처음에는 “기업이 정부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다”고 답변하던 대기업 총수들은 같은 내용의 질책이 반복되자 “국회에서 입법을 해서 (준조세 성격의 기부를) 막아달라”(구본무 LG그룹 회장)고 역제안하기도 했다.

◆대기업이 주인공?

최순실을 비롯한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공직자가 아닌 기업인들이 청문회 주인공이 된 현실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대기업 임원은 “최순실을 비롯한 이번 사태의 장본인은 7일 청문회에 출석하기로 돼 있는데, 대부분은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며 “왜 기업인들이 장본인보다 먼저 불려 나와서 이 사태의 주범 취급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인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 대부분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인데,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다”며 “이는 결국 우리 발등을 찍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