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교육라운지] 정유라, '중졸'로는 조롱하지 말자
정유라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엄청나다.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의 딸로 그동안 온갖 특혜를 받았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망언’을 남겼으며, 그럼에도 아직까지 수사 받지 않고 유유히(!) 해외 체류 중이어서 그렇다.

이 문제적 인물은 지난 2일 이화여대 입학 취소에 이어 5일 청담고 졸업 취소 조치까지 당했다. 불과 며칠 만에 최종학력이 ‘대학 재학’에서 ‘중졸’로 내려앉게 됐다.

학교에 적을 둔 학생 신분이었으나 고교에서도, 대학에서도 정유라의 얼굴은 보기 힘들었다. 학생의 기본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장을 받았고 입시에 합격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까지 보장받았다.

미처 충족 못한 기본요건은 각종 권력과 금력, 압력과 회유로 메웠다. 정유라는 승마대회 출전을 핑계로 허위 문서를 꾸며 제출했다. 입시 면접에는 기한이 지난 금메달을 갖고 들어가 “보여드려도 되나요?”라며 당당히 어필했다. 수준 미달의 과제물과 대리출석, 대리응시로도 학점을 따냈다.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지면서 정유라를 용인하고 통과시킨 ‘교육’과 ‘학교’는 참담함을 감내해야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정유라 의혹 관련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렇게 소회를 전했다. “21세기 한국의 학교와 교실에서 이런 노골적인 압력·수뢰·폭언·기만·조작·특혜가 자행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난 10월19일 정유라 특혜 의혹 해명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이대 교직원과 학생들. / 한경 DB
지난 10월19일 정유라 특혜 의혹 해명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이대 교직원과 학생들. / 한경 DB
선을 넘은 정유라에 대한 공분은 당연하다. 단 정유라를 겨냥한 무차별적 공세의 일부에는 불편한 구석이 있다. ‘중졸 주제’에 ‘이대 나온 여자’씩이나 되려 했다는 식의 비난은, 결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Political Correctness) 않다.

그것은 은연중 학벌과 학력주의가 묻어나는 조롱이다. 정유라라는 대상을 괄호 치면 이같은 편견은 도리어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와중에 우리는 학력으로 인해 수많은 차별을 받아온 중졸·고졸 학력자들에게 또 한 번 큰 상처를 내고 있는 것 아닐까.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정유라는 중졸 학력이어서가 아니라, 부정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학교를 기만하고 교육을 농단·능멸한 바로 그점 때문에 비판 받아야 한다.

그가 받아온 특권과 특혜에 비춰 대학 입학 취소, 고교 졸업 취소란 조치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는 있다. 그렇다 해도 정유라를 비웃는 쾌감에 취해 비판의 분별력을 잃어선 곤란하다.

어쩌면 “중졸 주제에”라는 독설은 “돈도 실력이야”라는 정유라식 경멸과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정치적 올바름(PC)이 더욱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정유라·최순실의 절망스러운 세속주의를 가장 강고하게 비판하는 도덕적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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