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정부가 넘긴 예산안을 심사하는 곳이다. 예결위는 투명한 논의 과정을 거쳐 정부 예산안에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 법정 시한인 12월2일까지 본회의에 넘기는 게 임무다. 하지만 올해 외부에 공개된 예결위 일정표를 보면 지난달 22일 제11차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마지막이다. 이후에는 공식 일정이 없다. 그렇다고 예산 심사를 마친 것은 아니다. 예산안조정소위 내 또 다른 소위인 이른바 ‘증액소(小)소위’로 예산 심사가 넘어갔기 때문이다.
쪽지예산 없앤다더니…국회 예산심사의 민낯
쪽지예산 주범 ‘증액소소위’

증액소소위는 여야 각당의 간사 3명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또는 2차관)만 참석하는 비공개 회의다. 회의 시간과 장소는 예결위 소속 의원과 직원, 기재부 공무원 외에는 비밀에 부쳐진다. 이곳에서 정치권은 10여일 동안 1000개가 넘는 사업에서 5조4170억원을 증액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대부분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지역구 민원을 들어주기 위한 ‘쪽지예산’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국민은 예산 심사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이곳에서 지난 열흘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국회는 당초 국민적 공분 대상인 쪽지예산을 없애겠다며 올해는 예산안조정소위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는 약속을 어기고 비공개로 진행했다. 김현미 국회 예결위원장은 지난달 22일 “국회 증액요청 사업이 너무 많아 일일이 공개하면서 추진하기 어려워 간사들과 협의해 비공개로 심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도 “전부 공개해서 진행하면 두 달 넘게 걸린다”고 설명했다.

작년보다 쪽지예산 1000건 증가

예결위에 따르면 의원들이 요구한 증액 사업은 지난해 3000여건에서 올해 4000여건으로 늘었다. 액수로 따지면 9조원에서 40조원으로 네 배 이상 급격히 증가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가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쪽지예산을 절대 받지 않겠다고 공언하자 공식 절차를 거치는 경우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국회에선 공식 절차를 거친 예산은 기존 ‘쪽지’를 밀어넣어 부탁하는 예산과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당초 정부 예산안에 없다가 국회 심사 과정에 새로 추가되거나 증액된 지역구 사업 모두를 쪽지예산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는 절차만 달랐을 뿐 쪽지예산은 오히려 급증했다.

쪽지 안 먹히면 ‘부대의견’ 활용

증액소소위에서의 심사 기준은 따로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에도 4000건을 전부 보지 않고 각당과 정부에서 증액할 만한 사업을 따로 뽑아서 심의했다”고 설명했다. 정당별로 증액 가능한 액수를 정해놓고 각당에서 의원 선수(選數), 지역 안배 등을 따져 증액 사업을 엄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결위 소속 한 의원 보좌관은 “과거 각당의 간사와 기재부 예산실장이 각 지역구 민원예산을 늘어놓고 막판에 실세 의원 순으로 안배하던 관행과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주요 심사 항목에서 빠지거나 최종안에서 누락된 경우에는 부대의견을 적극 활용했다. 최종예산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다음해 예산안에 반영할 때 압박하는 도구로 쓰고 지역구에는 예산에 간접적으로 반영됐다고 선전할 수 있어서다. 부대의견은 지난해(올해 예산안) 47개에서 올해(내년 예산안) 57개로 증가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