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미스터리 범죄' 해결사…현장서 범인 생각 읽는다
경찰은 지난 10월 수사대를 필리핀에 급파했다. 필리핀 바콜로시 외곽 사탕수수 밭에서 한인 남녀 3명이 총기로 살해된 사건이 터진 직후였다. 살해 현장은 폐쇄회로TV(CCTV)가 없는 농촌이었다. 증거 수집이 만만치 않았다.

[경찰팀 리포트] '미스터리 범죄' 해결사…현장서 범인 생각 읽는다
하지만 파견 수사대 4명 중 2명은 프로파일러(범죄행동분석관)였다. 수사대는 현장에서 ‘청부살인’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피해자들은 차량으로 납치당했다. 목이 노끈으로 졸린 흔적도 수상했다. 청부살인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수사대는 금전이나 원한 문제가 섞인 범죄로 봤다.

프로파일러는 숨진 피해자의 옷에서 단서를 찾았다. 피해자들은 외출복이 아니라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프로파일러는 “집에서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피해자들이 묵은 건물에서 증거를 찾아냈다. 음료수 캔에서 용의자 박모씨(38)의 지문이 나온 것.

당시 현장에 파견된 윤태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경사(프로파일러)는 “피해자 숙소에선 아무런 저항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며 “범인이 총으로 겁박해 피해자들이 순순히 차에 올라탔다는 상황까지 추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용의자 박씨는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인 지난달 17일 현지에서 검거됐다. 박씨는 피해자들과 카지노 투자금을 놓고 갈등을 겪다 이들을 죽이고 돈까지 가로채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단초 제공’ 역할 늘어

프로파일러는 범죄 사건의 정황이나 단서를 통해 용의자의 범행 동기를 분석하는 전문가다. 한국 경찰 조직에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이 도입된 것은 2000년이다. 당시 2월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에 범죄행동분석팀이 생겼다. 프로파일러가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이후다. 20여명을 연쇄살인한 유영철 사건이 계기가 됐다. 전국에선 프로파일러 31명이 활동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5명, 나머지 지방청의 프로파일러는 1~2명에 불과하다.

초기 프로파일러의 임무는 범죄자의 행동을 분석해 정리하고 검거한 피의자를 상대로 범죄심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정도였다. 요즘에는 프로파일러가 수사 방향을 적절히 설정해 범인 검거에 단초를 주는 일이 많아졌다. 필리핀 한인 살해 사건은 경찰 내부에서도 프로파일러가 수사 방향을 이끌어 해결한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프로파일러가 강력범죄 수사 방향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용의자 분석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과학수사요원이 현장에서 물리적인 증거를 찾는 반면 프로파일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범죄자의 심리나 행동패턴을 찾는다.

‘묻지마 범죄’ 패턴 분석 주력

‘묻지마 살인 범죄’가 잇따르면서 범행 동기를 파악하는 프로파일러의 역할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물증이나 범행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강력사건에선 분석을 통해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차후 유사범죄를 막을 수 있다.

지난 5월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땐 여성혐오 논란이 일면서 프로파일러의 분석이 주목받았다. 프로파일러는 “전형적 피해망상 조현병(정신분열증)에 따른 묻지마 범죄”라고 공식 의견을 내놨다. 이상경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경사는 “범인은 ‘지하철로 출근해야 하는데 여성들이 천천히 걸어 나(범인)를 지각하게 했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며 “현실에 근거한 증오범죄가 아니라 정신질환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서울 오패산터널에서 사제 총기를 쏴 경찰관을 숨지게 한 성병대(46) 사건도 마찬가지다. 프로파일러는 성씨의 ‘과시적 성격’에 주목했다. 그는 ‘오시오 헤이아치로’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오시오는 일본 에도시대 막부정권에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는 “오시오 같은 영웅적 인물이 되려면 총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인 도구로 총을 만들어 사용한 이유다. 프로파일러는 “성범죄 등 전과로 오랜 기간 수감되면서 ‘경찰과의 총격전’으로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고 결론 내렸다.

프로파일러도 흉악범과의 면담 자체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범행 동기를 알아내기 위해 미소를 짓기도 하고, 차분하게 설득도 해야 한다. 한 프로파일러는 “인간으로서 하기 어려운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와 2~5시간 면담하고, 이들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