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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사이드 人터뷰] 아산상 의료봉사상 받은 박종철 원장 "뇌전증, '악마의 병'도 정신병도 아냐"

입력 2016-12-02 17:48:37 | 수정 2016-12-03 01:17:33 | 지면정보 2016-12-03 A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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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사회적 편견과 싸워…마음을 보듬는 치료, 계속해야죠"

작가 꿈꾸던 문학 소년
"공대 가라"는 아버지와 타협, 의대 입학
연세대 의대 신경정신과 레지던트 1호
아무도 하지 않는 특별한 것을 하고 싶어

1965년 사단법인 '장미회' 창립
선교사가 데려 온 간질 환자 치료 '인연'
국내 거의 없던 교재·환자 치료법 소개
뇌전증 전공의사만 2000여명 '상전벽해'

'부끄럽고 감춰야 할 병' 편견
암·고혈압 있다고 부끄러워 하지 않는데…
몸 관리 철저…안전 사고 등 오히려 적어
'200명 중 1명' 뇌전증 환자 약 60만명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기사 이미지 보기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뒤쪽 먹자골목 사이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낡은 간판이 있다. ‘박종철신경정신과의원’. 지난달 25일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주는 아산상 의료봉사상을 받은 박종철 원장(83)이 40년 넘게 환자들을 진료해온 곳이다. 박 원장은 뇌전증(腦電症: 간질의 정식 의학용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미하던 1960년대부터 환자 치료와 인식 개선에 정성을 쏟았고 네팔 뇌전증 협회 설립, 오지마을 병원 설립, 한국생명의전화 및 자살예방협회 활동 등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이 상을 받았다.

지난달 29일 찾아간 병원의 내부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낡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깨끗하고 따뜻했다. 박 원장은 “나처럼 잘난 게 없는 사람한테 무슨 얘길 들을 게 있느냐”며 “아산상도 내 이름으로 받은 것일 뿐 나 혼자 받은 게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만 그가 담담히 들려준 자신의 인생과 뇌전증 환자들의 얘기는 ‘닫힌 한국 사회’의 일면을 드러내는 아프고도 투명한 유리조각 같았다. “지금은 뇌전증 환자 치료와 처우가 많이 개선됐죠. 그렇지만 과연 진정으로 달라진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중국 네팔 필리핀 등지로 뇌전증 치료 봉사활동을 종종 가는데 그때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물리적 치료가 발전된 만큼 마음을 보듬는 치료까지 함께 발전되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문학 소년’, 신경정신과 의사 되다

“난 원래 불문과를 가고 싶어했어요. 글쓰기를 정말 좋아했죠.”

박 원장은 “10대 시절까지만 해도 작가가 되겠다는 꿈밖에 없었다”며 “의사가 된 건 아버지와 타협한 결과”라고 회상했다. “그때 우리 아버지께서 나더러 공대를 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난 공대는 죽어도 가기 싫었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우연히 어떤 의사가 쓴 소설을 봤어요. 독일 작가 한스 카로사의 《의사 기온》이란 책이었죠. ‘아, 의사도 글을 쓸 수 있구나’란 생각에 세브란스의대(현 연세대 의대)를 지원했는데 그게 어쩌다 덜컥 합격됐더라고요.”

그는 의대 입학 후 신경정신과를 전공으로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도 하지 않는 특별한 것을 하고 싶어서”였다. 실제 박 원장은 연대 의대 신경정신과 레지던트 1호다. “1950년대엔 산부인과와 외과가 제일 인기 많은 전공이었어요. 지금은 상상이 안 가죠? 그땐 그 전공을 하면 돈을 많이 버니까 그리로 몰린 거지 다른 이유 없어요. 인기 전공이란 게 다 그래요. 시대가 변해도 이유는 똑같죠. 돈을 잘 벌고 싶다는 것.”

박 원장이 1958년 의대 졸업 후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됐을 무렵 국내엔 해당 전공 의사가 전국에 다 합쳐도 100명이 채 안 됐다. 그는 “내가 학교 다닐 땐 신경정신과 공부한 의대생이 열댓 명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젠 1만명 가까이 되죠. 그중에서 뇌전증 치료를 전공한 의사가 2000명이 넘어요. 상전벽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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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무지의 가시’ 사이에서

박 원장이 뇌전증 치료에 처음 나서게 된 계기는 1965년 개업의 시절 미국 출신 선교사 레나 벨 로빈슨이 자신의 제자를 데리고 병원에 찾아와 그에게 발작 응급 처치를 요청한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국내엔 뇌전증 관련 치료법이나 기본 교재가 거의 없었다. “그때만 해도 뇌전증은 ‘악마의 병’이라 했어요. ‘하늘이 벌을 내려 저런 병에 걸린 것’이란 편견이 팽배했죠. 환자는 많은데 의사는 없고, 뇌전증 환자들은 그 편견과 무지의 화살을 온몸으로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1965년 로빈슨 선교사, 유재춘 목사와 함께 간질 환자를 위한 사단법인 ‘장미회’(현 로즈클럽인터내셔널)를 창립했다. 또 뇌전증과 관련된 국제 학회를 통해 치료 및 환자 관리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국내에 소개했다. 단체 이름을 ‘장미회’라 지은 이유는 “장미에 가시가 있지만 그 가시가 장미의 아름다움을 가리진 못하듯, 뇌전증 역시 환자의 존엄한 권리를 가릴 수 없다는 걸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박 원장은 설명했다.

박 원장은 “뇌전증은 몸만 아픈 게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아픈 병”이라며 “대부분 원인 불명인 데다 대사증후군이나 고혈압, 알코올 의존증 등과 달리 환자 자신의 잘못으로 생기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선 더 괴롭다”고 말했다. “국내 뇌전증 환자는 약 60만명입니다. 환자들 대부분 약물치료를 받으며 일반인과 전혀 다름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뇌전증 환자란 것을 들키는 순간 어떻게 될지 불 보듯 훤히 알기 때문에 여전히 병을 숨기려 하죠. 뇌전증을 치료하면서 가장 힘든 건 환자와 환자 주변 사람에게 박혀버린 편견과 무지와 마주하고 싸우는 일입니다.”

그는 자신이 돌봐온 환자들의 몇몇 사연을 들려줬다. 어떤 남성은 직장에서 일하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뒤 뇌전증 진단을 받고 직장에서 쫓겨날 뻔했다가 박 원장이 고용노동부와 해당 회사, 건강보험공단 등에 백방으로 뛰어 간신히 해고 위기를 넘겼다. 시부모와 함께 살던 한 여성 뇌전증 환자는 시댁 모르게 뇌전증 치료를 받다가 시어머니에게 복용 중인 약봉투를 들킨 뒤 집에서 쫓겨났다. “뇌전증 환자란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가정에서 이혼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과거엔 지금보다 훨씬 많았죠.”

박 원장은 “내가 치료한 환자들 중엔 의사나 국회의원, 은행장 등 전문직 종사자가 의외로 많다”며 “뇌전증을 앓는 환자층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넓다”고 말했다. “아마 어떤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그 사람 주위 200명 중 1명은 뇌전증을 앓고 있을 겁니다. 그만큼 흔한 병입니다. 이건 정신병으로 오해받지만 결코 정신병이 아닙니다. 그저 뇌에 만성질환이 생긴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암을 앓는다고 부끄러워합니까. 고혈압 약을 먹는다고 감춥니까. 그런데 뇌전증은 지금까지도 ‘부끄럽고, 감춰야 할 병’으로 인식되는 게 현실입니다.”

“뇌전증 환자, 고혈압 환자보다 건강해”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박 원장은 “성경에 보면 예수가 귀신 들린 병을 치료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병이 뇌전증일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또 “예수가 그 환자의 병을 낫게 하면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하는데, 난 그 메시지를 ‘뇌전증은 악마의 병이 아니라 너의 몸과 마음을 더욱 건강하고 정갈하게 가꿔나가도록 하는 전화위복의 시련일 뿐’이란 일갈로 듣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뇌전증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고혈압 환자보다 훨씬 건강하다”며 “발작을 막기 위한 약물치료와 더불어 건전하게 생활하며 관리하는 게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뇌전증 환자들은 알코올을 섭취할 수 없고, 적절한 다이어트와 운동을 해야 병세 악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평소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업무상 과실이 오히려 적어요. 안전사고도 적고요.”

박 원장은 “신경정신과 의사에겐 정년이 없다”며 “이 세상 떠날 때까지 나 자신을 위해, 환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원하는 일을 하고, 그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이라고 평가해주니 그것 자체가 저로선 감사한 일이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뇌전증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사라질 날이 어서 오길 꿈꿉니다.”

'간질' 뇌전증, 제대로 알기
원인 아직 몰라…약물치료로 정상생활 가능


뇌전증(腦電症)은 관련 발작을 유발하는 원인 인자가 없음에도 2회 이상 반복적으로 발생해 만성화된 질환군을 통칭한다. 뇌의 신경세포가 갑작스럽게 과흥분해 제멋대로 뇌파가 생성돼 기절 또는 구토, 신체 일부의 떨림, 청색증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흔히 간질이라 불린다. 간질 자체가 잘못된 용어는 아니지만, 사회적 편견과 그에 따른 낙인의 부작용을 고려해 뇌전증으로 용어를 바꿨다. ‘귀신 들린 병’ 또는 ‘지랄병’ 등으로 불리며 환자들이 사회에서 사실상 격리돼 큰 고통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발병률과 유병률은 선진국보다 후진국이 두세 배 높다. 개인별 생애주기 기준으로 보면 생후 1년 이내, 50세 이상 장·노년층에서 다시 증가하는 U자형을 보인다. 유전으로 발생되는 경우는 1% 미만이며 대부분 원인 불명이다.

뇌전증은 정신질환으로 오해받을 때가 많지만 실은 그와 전혀 관계가 없다. 경련 및 발작을 방지하는 약물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으면 대다수 환자가 발작 없이 일반인과 똑같은 일상생활과 업무를 할 수 있다. 특히 소아 뇌전증은 일찍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또래 일반 아동과 다름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으며, 뇌전증을 앓는 임신부를 위해 개발된 약도 있다.

뇌전증 환자가 발작했을 때 가장 적절한 조치는 환자가 숨을 쉬는지 확인한 뒤 다치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환자의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입 속의 내용물이 나오게 하고,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한다. 사지를 주무르거나 손을 따는 등의 행위를 하면 안 되며, 발작이 3분 이상 지속되면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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