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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서거·전국 비상계엄령 선포, 급박했던 1970년대말 현대사…혼란 또 혼란

입력 2016-12-02 16:18:45 | 수정 2016-12-02 16:18:45 | 지면정보 2016-12-05 S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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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44)
5·18 민주화운동은 이곳 전남대학교 교문 앞에서 벌어진 계엄군과 대학생 사이의 다툼에서 시작되었다.기사 이미지 보기

5·18 민주화운동은 이곳 전남대학교 교문 앞에서 벌어진 계엄군과 대학생 사이의 다툼에서 시작되었다.

전두환의 등장…계엄 혼란 지속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전국에는 비상 계엄령이 내려졌습니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나라는 큰 혼란에 빠졌지요. 유신 헌법에 따라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었고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최규하 총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정치인과 군부 엘리트들이 싸움에 뛰어들었습니다. 육군 참모총장이던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으로서 당시 군부의 수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시해 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전두환 장군을 중심으로 또 다른 군인 세력이 힘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세력은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승인 없이 국방부를 습격하여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했습니다. 이로써 전두환은 군부의 모든 실권을 손에 쥐게 되었지요. 이렇게 새로 등장한 권력의 실세는 신군부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 2월 윤보선, 김대중, 김영삼 등 유신 체제에 저항해온 정치인들의 공민권이 회복되었습니다. 또 봄에는 억눌려 있던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분수처럼 솟아올랐지요. 유신 반대 시위 등 저항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거나 학교에서 쫓겨난 많은 학생이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학생들은 계엄 해제와 신군부가 물러나기를 요구하며 집회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5월이 되어서도 최규하 대통령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5월 14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역 광장에서는 10만여 명의 학생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신군부는 사회 불안을 안정시킨다며 비상계엄을 오히려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또 국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했습니다. 김대중, 김영삼 등 정치인들도 다시 갇히게 되었지요.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교문 앞에서는 계엄군이 학생들의 등교를 막았습니다.

광주 시내 악성 루머…대규모 시위

5월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전남대학교 교문 앞에서 계엄군과 대학생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등교를 막는 계엄군 공수부대에 학생들이 돌을 던졌고 군인들은 학생들을 쫓아가 때리고 그들을 체포했습니다. 전남대 학생 1000여 명은 이에 항의하여 계엄 해제 구호를 외치며 파출소를 습격했지요.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한 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5·18 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날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습니다. 시위대는 화염병, 돌 등을 던지는 것은 물론 기름통에 불을 붙여 경찰들에게 굴려 보내기도 했지요. 또 공수부대의 장갑차를 빼앗으려고 했는데 이를 막기 위해 공수부대 장교가 위협사격을 했습니다. 광주에서 계엄군이 최초로 총을 쏜 것입니다. 이날 시위에서 민간인이 또 한 명 사망했습니다. 시위대는 물론 군인과 경찰도 수십 명 부상을 입었습니다.

광주 시내에는 악성 루머가 돌아 시민의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시내 곳곳에서 수십 명이 죽었으며 공수부대가 공산당보다 훨씬 무자비하게 진압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일부러 경상도 출신 계엄군을 투입했다며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소문도 있었지요.

시위는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격렬해졌습니다. 시위대는 광주 일대를 점령하고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을 빼앗아 무장했습니다. 시위대와 맞서게 된 공수부대는 경찰관과 군인들의 사망에 자극을 받아 실탄 지급을 요청하였고 그들에게 실탄이 주어졌습니다. 이로써 광주는 본격적인 전쟁터가 되어버렸지요.

국립5·18민주묘지.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동안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었다.기사 이미지 보기

국립5·18민주묘지.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동안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시민 장갑차가 군인에게 돌진…총격 시작

가장 비극적인 사태는 6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시위대가 빼앗은 장갑차 한 대가 도청을 방어하고 있던 공수부대를 덮쳐 군인 한 명이 죽었습니다. 뒤이어 시위대의 버스도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돌진했지요. 공수부대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이날 민간인과 군인, 경찰 등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도청은 시위대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매일 유혈 사태가 계속되자 온건파 시민 대표들은 무기를 반납하고 도청에서 철수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강경파는 이를 끝내 반대하였지요. 6월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쳐들어가 끝까지 도청에 남아 있던 시민군을 진압했습니다. 이로써 5·18 민주화운동이 막을 내렸습니다.

1995년에 발표된 ‘5·18 관련 사건 수사 결과’에 따르면 열흘 동안 250명에 가까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글=황인희/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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