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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수출국기구(OPEC)가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원유 생산량 감축에 합의하면서 국내 관련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국내 정유·화학·조선업체들의 수혜가 기대된다. 하지만 감축 합의가 제대로 이행된 적이 없고 미국이 셰일가스 생산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정유·화학업체 실적 개선 기대

에쓰오일은 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전날에 비해 2.38% 오른 8만6000원에 장을 마쳤다. SK이노베이션(0.66%) GS(0.55%) 등 다른 정유주들도 상승했다. 롯데케미칼(5.75%) LG화학(1.32%) 한화케미칼(3.44%) 등 석유화학주들도 상승세를 탔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열린 OPEC 회의에서 회원국이 하루 최대 생산량을 3250만배럴로 120만배럴 줄이는 데 합의했다는 소식이 호재로 작용했다. 국제 유가도 곧바로 반등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내년 1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4.21달러(9.3%) 뛴 배럴당 49.4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9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정유·화학·조선주 주가 '불 붙을까'
원유값 상승은 정유·화학업체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오르기 전 가격에 사들인 원유를 정제해 제품으로 만든 뒤 오른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올 4분기 전년 동기보다 143.3% 늘어난 6709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전망이다.

현대중공업(5.63%) 삼성중공업(5.9%) 현대미포조선(2.75%) 등 조선주도 ‘보릿고개’가 끝날 것이란 전망에 오랜만에 강세를 보였다. 조선업계에서는 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서면 중단됐던 해양플랜트 발주가 재개되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저유가 혜택을 톡톡히 보던 한국전력은 발전 원가가 증가할 것이란 우려에 4.3% 하락했다. 발전용 원료로 사용되는 유연탄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원유값마저 오르면 한국전력의 영업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항공유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대한항공(-3.04%) 아시아나항공(-3.61%) 제주항공(-4.68%) 등도 일제히 하락했다.

◆“유가 60달러 돌파 힘들 것”

전문가들은 유가 상승이 증시에 미칠 영향이 단기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의 ‘국제 유가 족집게’로 유명한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원유값이 배럴당 50달러대의 ‘박스권’을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손 연구원은 “1990년 이후 11차례의 감산 합의가 있었지만 제대로 이행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2~3개월 감산하고 다시 증산하는 패턴이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국가 재정이 바닥을 드러낸 중남미 국가 등이 증산을 시작하면 중동국가들도 이를 따를 것이란 예상도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셰일가스 개발을 공약한 것도 유가 상승세를 막아설 것이란 분석이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미국이 셰일가스를 개발하기에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뿐이라는 것이다. 김훈길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셰일가스 등장으로 원유시장의 구조가 바뀐 2015년 이후 OPEC의 의지가 국제 유가에 반영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원유값이 50달러 중반대를 넘어서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은 장 초반 4% 후반대의 강한 상승세를 보였지만 기대가 사그라지면서 오후 들어 1% 미만으로 상승폭이 줄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