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오른쪽)와 테드 버크가 마이크와 ‘도킨스 오르간’으로 귀뚜라미의 행동을 기록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리처드 도킨스(오른쪽)와 테드 버크가 마이크와 ‘도킨스 오르간’으로 귀뚜라미의 행동을 기록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75)는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과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친숙한 과학자’로 꼽힌다. 세이건이 논픽션과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우주를 향한 꿈을 심어줬다면, 도킨스는 ‘20세기 다윈’으로서 스스로 새로운 아이콘이 됐다. 도킨스 자신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로 보고,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온갖 이기적 행동을 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만들어진 신》에선 신앙을 가진 인간이 신의 이름으로 벌인 전쟁과 그로 인한 기아, 빈곤 등을 거침없이 파헤치며 무신론자의 신념을 강하게 표출했다.

[책마을] '20세기 다윈'도 이기적 유전자의 결과물
이 ‘까칠하고 도발적인 과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방대하게 펼친 회고록을 냈다. 《자서전 1-어느 과학자의 탄생》과 《자서전 2-나의 과학 인생》이다. 한국어판 기준으로 두 권을 합친 분량이 1000여쪽에 달하지만, 도킨스 특유의 재치있는 문장과 이를 잘 살린 맛깔스러운 번역이 책을 한 장 한 장 쉽게 넘기도록 독자를 이끈다. 평소 저서나 토론을 통해 날카로운 독설을 날리던 도킨스가 자서전에선 ‘친절한 도킨스’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1권과 2권은 《이기적 유전자》 출간을 기준으로 나뉜다. 1권은 도킨스의 어린 시절, 그가 어떤 계기로 과학에 빠져들게 됐는지, 스스로 베스트셀러로 꼽는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주로 서술한다. 2권은 스타 과학자가 된 뒤에도 지치지 않고 탐구하는 지적 여정과 그의 인생에 영향을 준 여러 학자, 《만들어진 신》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 등을 소개한다.

도킨스는 자서전에서 굳이 자신을 드높이려 하지 않는다. 그저 도킨스가 도킨스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책 맨 앞엔 그의 가계도가 나온다. 집안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이 이어질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트릭이다.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결과물로 자신이 태어났다는 상징으로 제시한 것이다.

1941년 케냐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영국으로 돌아와 과학자가 됐을 때, 그는 “아프리카에서 보낸 유년 시기가 전공을 정하는 데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다. 이에 대해 “사파리에 가서도 장난감 자동차에 홀딱 빠져 사자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고 ‘쿨하게’ 답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들으며 종교적 신비를 느꼈지만, 학교 예배당에선 기도 시간에 무릎 꿇기를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떡잎부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모교인 옥스퍼드는 “내 인생이 만들어진 곳”이라고 극찬한다.

벗들에 대해서도 줄줄이 소개했다. 과학자부터 작가, 출판사 편집인, 배우 등 직업이 다양하다. 스티븐 호킹, 살만 루시디, 전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기술책임자이자 요리와 과학을 접목한 책 《모더니스트 퀴진》으로 유명한 네이선 미어볼드, “‘이기적 유전자’를 자신이 출판해야 한다”고 도킨스에게 우긴 편집인 마이클 로저스 등 면면이 화려하다.도킨스는 2권 중 상당 분량을 저서 출판과 방송 관련 에피소드에 할애하며 그와 자신의 작업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증을 재치있게 풀어낸다.

“일흔이 넘었어도 영혼은 스물다섯”이라고 말하는 도킨스는 자서전을 쓴 이유를 오히려 독자에게 되묻는다. “자서전에서 감상적인 말을 할 수 없다면 대체 어디서 하겠는가?”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