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우버, 샤오미, 다음카카오…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들 기업에는 닮은 점이 하나 있다. 벤처캐피털로부터 사업자금을 받아 ‘스타 벤처’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하던 사업 초기에 벤처캐피털이 ‘수혈’한 자금은 이들 기업의 도약을 이끈 밑거름이 됐다. 벤처캐피털은 ‘위험을 감수한 투자’ 덕분에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 돈은 다시 또 다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들어가 ‘제2의 우버’ ‘제2의 카카오’를 키우는 종잣돈으로 쓰이고 있다. 이처럼 건강한 ‘벤처 투자 생태계’가 형성되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많은 청년이 취업이 아닌 창업을 길을 선택하게 된다. 국가적 과제인 청년 고용이 늘어날 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바이오 의약품 등 분야 스타트업들이 대거 배출된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전 세계가 벤처투자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벤처투자가 미래다] 사물인터넷·AI·바이오…'스타벤처' 키우는 벤처캐피털
벤처 열풍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

영국 시장조사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벤처 투자액은 1358억달러(약 158조원)로 집계됐다. 2014년의 935억달러(약 109조원)보다 45% 늘어난 수치다. 세계 벤처 투자금액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떨어지다 2014년부터 급격하게 늘고 있다.

이 가운데 벤처기업이 일반 기업이 아닌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받은 금액은 대략 130조원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벤처투자가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이다. 지난해 벤처캐피털로부터 신규 투자를 받은 미국 벤처기업은 3709개사에 달했다. 투자금액은 590억달러(약 67조원)로 2014년(508억달러·59조원)보다 16% 늘었다. 사상 최대 규모다.

모바일 차량 예약 서비스업체인 우버(31억달러)와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15억달러) 등이 지난해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을 수혈받은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돈을 지원받은 덕분에 이들 기업은 창업한 지 몇 년 안됐는데도 전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벤처 투자 증가율로 따지면 세계 1위는 중국이다. 지난해 1716개 업체에 450억달러(약 51조원)가 투입됐다. 이는 1년 전(177억달러·20조원)에 비해 무려 154%나 늘어난 수치다. 중국이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벤처 대국’이 된 비결은 뜨거운 창업 열기와 잘 발달한 벤처 인프라 덕분이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중국에서 새로 문을 연 기업은 401만개. 하루 평균 1만4000여개 스타트업이 창업한 셈이다. 8000개에 달하는 벤처캐피털은 이 중 ‘될성부른 기업’을 골라 자금을 투입해준다.

유럽도 지난해 벤처투자 금액을 늘렸다. 지난해 38억유로(약 4조7759억원)를 투입, 전년(36억유로)보다 5%가량 확대됐다.

한국 벤처투자 시장도 성장중

[벤처투자가 미래다] 사물인터넷·AI·바이오…'스타벤처' 키우는 벤처캐피털
벤처투자 열풍은 한국에서도 불고 있다.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 금액은 2조858억원으로 2014년(1조6393억원)보다 27%나 늘었다. 같은 기간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은 기업 수도 901개에서 1045개로 확대됐다. 이런 기조는 올 들어서도 유지되고 있다. 올해 1~9월 벤처캐피털의 투자 금액은 1조4815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1조5583억원)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투자기업 수는 789개에서 867개로 확대됐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을 확대시킨 일등공신은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성장사다리펀드, 산업은행 등 정책자금 집행기관이다. 이들이 벤처 육성을 위해 수조원의 정책자금을 푼 덕분에 벤처투자 시장은 커졌다.

특히 2005년 설립된 한국벤처투자는 지난 11년간 벤처 생태계 조성에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모태펀드는 벤처펀드에 돈을 나눠주는 ‘펀드 오브 벤처펀드’다. 한국벤처투자가 위탁운용사(벤처캐피털)를 선정해 모태펀드 자금을 출자하면 운용사가 민간자금 등을 추가로 모집해 자펀드를 조성하는 방식이다. 지난 11년간 모태펀드로부터 출자받은 자펀드들이 투자한 벤처기업은 약 8000곳에 달한다. 투자금액은 누적 기준으로 올해 사상 첫 10조원을 돌파했다. 다음카카오, YG엔터테인먼트 등이 모태펀드로부터 자금수혈을 받아 스타 기업으로 성장했다.

“벤처 키워야 미래 있다”

많은 전문가는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재도약시키는 해법으로 ‘벤처기업 육성’을 꼽는다. 높은 실업률, 부족한 미래 성장동력 등 기존 시스템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우리 경제의 불안요소들이 벤처 육성을 통해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벤처업계에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벤처기업 지원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4차 산업혁명이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로봇기술 생명과학 등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말한다. 산업계에선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국내외 기업들에 엄청난 사업기회가 열릴 것이며, 그 기회의 상당 부분은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해선 벤처투자 재원을 한층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해 각각 69조원과 52조원을 IoT, AI 등 4차산업 관련 스타트업에 투입하고 있는 미국, 중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벤처 투자규모(2조원)는 너무 작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은 국내 기업 수는 1045개로 미국(3709개)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고, 업체당 투자금액(20억원)은 중국(297억원)의 15분의 1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 모태펀드의 핵심 계정인 중소기업진흥계정(중진계정)은 2년 연속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다. 중진계정이 청년창업 등 정책 분야에 집행되는 점을 감안할 때 창업열기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신규 예산을 계속 배정받지 못하면 시장에서 정부의 벤처투자 의지가 약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용성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도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세계화가 중요하지만 국내 기업의 글로벌화는 스스로 힘으로는 어렵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우수기업을 해외에 소개하고, 사업을 연계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상헌 / 김태호 / 이동훈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