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 수출 부진에 소비 위축이 겹치면서 성장률은 지난 3분기까지 네 분기 연속 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질 조짐을 보이는 등 대외 여건도 악화하고 있다. 4분기부터 내년 1분기까지의 ‘골든타임’ 동안 극적인 반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심각한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 공백마저 장기간 지속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경제 리더십이 상실돼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울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평가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전문가들은 생산, 소비, 수출이 일제히 나빠지는 상황에서 국정 공백 등 정치 리스크마저 더해져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대외무역 의존도가 80%가 넘는 한국 경제의 고전이 예상되고 국내 주력 수출품목의 성장성도 떨어지고 있다”며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되면 ‘제2 외환위기’를 당할 수 있다”며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은 현 경제 상황을 ‘늪지형 위기’라고 표현했다. 한국 경제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수출 부진, 대외 여건 악화 등으로 늪에 빠진 것처럼 가라앉고 있는데 돌파구가 없어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강 원장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규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추동력이 떨어진 상태”라며 “국정 공백으로 정책 집행의 일관성도 약해져 경기의 하방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8일 한국 경제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6%로 대폭 끌어내리며 ‘경고음’을 울렸다. 정부는 다음달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면서 마지노선처럼 여겨온 ‘3.0% 달성’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실물 경기에 이어 경제 심리까지 악화되는 이른바 ‘복합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며 “불안정한 경제 상황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