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야당 일각에서 벌써부터 헌법재판소(헌재)를 압박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될 경우 헌재는 180일 이내에 최종적으로 탄핵 결정 선고를 해야 한다. 만약 기각 결정을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 때처럼 박 대통령은 다시 정상적으로 업무 복귀가 가능해진다. 혹시라도 이런 일이 재연될까 우려한 야권 인사들이 헌재가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며 미리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헌재가 감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민심과 어긋나게 탄핵을 기각한다면 국민은 헌법 제도 자체를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성 정의당 대표는 “헌재가 민심을 거르는 판결을 내놓을 수 없다고 본다”며 “기각 결정이 내려진다면 헌재 자체에 대한 헌법적 검토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야권 내에서는 “국회가 압도적인 탄핵 표결로 헌재가 기각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한마디로 국회의 탄핵발의도 없는 상태에서 ‘민심’ 운운하며 미리 여론 재판으로 몰아가려는 것이다. 야권이 이처럼 선수를 치는 이유는 현 헌재 구성상 탄핵 결정을 장담할 수 없어서다. 탄핵을 위해서는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6~7명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만큼 만만치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야권이 이런 식으로 헌재를 협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헌재 재판관들이 헌법과 법률, 그리고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야권은 이런 법치주의의 기본을 깡그리 무시하고 ‘광장’에서의 민심을 내세워 헌재에 엄청난 정치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고 국회 탄핵소추는 발의되지도 않았다. 특검도 예정돼 있는 만큼 헌재는 수사 결과를 충분히 지켜본 뒤 법리적 판단을 내리는 게 순리다. 여론과 법적 판단은 엄격히 구분해야 마땅하다. 삼권분립이나 법치주의 원칙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