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세계유산 백제’ 특별전 언론공개회. 연합뉴스
28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세계유산 백제’ 특별전 언론공개회. 연합뉴스
지름이 엄지손가락만한 원형 씨방에 연밥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주위를 타원형의 꽃잎 8개가 둘러싸고 있다. 꽃무늬지만 화려하기보다는 단아하다.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백제시대 웅진기(475~538)에 유행했던 ‘연꽃무늬 수막새’다. 불교에서 연꽃은 정화된 존재,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정신을 상징한다. 연꽃무늬 수막새는 백제의 사찰뿐만 아니라 도성에서도 널리 사용됐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든 불교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백제 웅진기와 사비기(538~660)의 대표 문화재 350건 1720점을 선보이는 ‘세계유산 백제’ 특별전을 29일 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개막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맞아 기획한 이번 특별전은 1999년 이후 17년 만에 백제를 주제로 여는 대규모 전시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웅진·사비기에 조성된 공주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나성·정림사지·능산리고분군,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등을 묶은 것으로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전시는 크게 도성, 사찰, 능묘로 구분된다. 도성 부분에서는 통치계급인 왕과 귀족들의 관련 유물을, 사찰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종교적 염원을 보여주는 유물을, 능묘에서는 왕가의 장례문화와 사후 세계에 대한 신앙을 나타내는 유물을 보여준다. 도성 안팎의 성곽, 관청, 창고, 공방, 정원, 부엌 등에서 나온 자료들을 통해 당시의 건물 구조, 행정 편제와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사찰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를 통해서는 백제 국교였던 불교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번 특별전에서 처음 공개되는 옻칠갑옷이다. 2011년 공산성에서 발굴된 이 옻칠갑옷에서는 ‘정관십구년(貞觀十九年)’(서기 645년)이라는 붉은 글자가 남아있다.

이달 초 복원을 마치고 학술대회에서 처음 공개된 부여 왕흥사지 치미도 볼거리다. 전통 건축물에 사용되는 장식기와인 치미는 지붕의 용마루 끝에 설치해 위엄을 높이고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한다. 백제 위덕왕이 577년 세운 왕흥사 터에서 발굴된 치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연꽃과 구름, 초화(草花) 등의 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마치 새가 꼬리를 세우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백제의 수준 높은 예술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륵사지석탑 사리구
미륵사지석탑 사리구
‘백제 불교문화의 꽃’으로 손꼽히는 사리장엄구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부여 왕흥사지,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사리장엄(사리를 담는 용기와 장식)을 처음으로 한데 모아 전시한다. 왕흥사지 3점, 미륵사지 2점, 왕궁리 5층석탑 2점 등 모두 7점이다.

백제의 대표 유물인 연꽃무늬 수막새 30여점도 모두 볼 수 있다. 도성뿐만 아니라 미륵사지, 정림사지, 왕흥사지, 능산리 사지 등 다양한 사찰에서 사용된 수막새를 한데 모았다. 사찰마다 공방을 두고 다양하게 만든 수막새를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백제가 중국 문물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도 이를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백제의 남성용 요강인 ‘호자’가 대표적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때 만들어진 청자 호자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백제 호자는 형태는 중국을 따랐지만 제조 기술은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사리구를 봉인하는 방식, 사리구에 새긴 세부 무늬 등도 백제의 독자적 문화를 보여준다. 도성 건축에서도 중국이 장방형으로 건설한 것과 달리 백제는 산이 많은 지형을 감안해 뒤에 산성을 배치하고 앞에 평지성을 뒀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고구려와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백제문화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보편적 가치를 선보이기 위해 특별전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30일까지.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